너희 안에 소금을 치고 서로 화목하라 (사 11:10-13; 고전 3:1-9; 막 9:38-50)/ 2022. 1. 16.

관리자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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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면서 서로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기들끼리 싸워서 힘의 공백이 생기자 외적의 침탈을 받고, 마침내 비참한 신세로 전락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방 나라로 끌려가거나, 떠돌이 유랑민 즉 디아스포라가 되어 어디서나 차별받는 신세가 됩니다. 이럴 때 예언자 이사야는 낮선 땅에서 차별받는 유랑민들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발신합니다.

“그날, 이새의 뿌리는 이방 민족의 깃발로 세워지리라.
이방인들이 그에게 찾아들고, 그가 안식하는 곳은 영광으로 빛나리라.”(사 11:10)

지금은 비록 사람 대접 받지 못하는 처지로 살고 있지만, 신세타령만 하지 말고, 남과 북이 서로 원수관계를 풀고 화목하라고 합니다. 그리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폐허가 된 땅에 이방 나라들이 흠모할 ‘깃발을 세우고’ 그곳을 당신이 ‘안식하는 처소’로 삼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장차 이뤄지기를 바라는 미래 세계의 꿈을 설파한 내용입니다. 당시로서는 가당치도 않은 꿈입니다. 제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내일을 꿈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게 수백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이사야의 꿈을 마음에 간직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이들이 메시아의 탄생 소식을 두고 이사야의 꿈이 성취된 것으로 해석한 이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우연히 태어난 인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보내실 것을 믿고 기다린 일단의 무리입니다.

문제는 이 이사야가 바란 꿈의 내용입니다. 이사야의 꿈은 단지 세계 만민을 지배할 강대한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와 다를지라도 서로 배척하거나 차별하지 않고 관용하고 환대하는 공동체를 꿈꾼 것입니다. 놀랍게도 그와 같은 꿈이 복음서에 오롯이 담겨 있고, 서신에도 담겨 있습니다.

복음서의 말씀은 바로 이사야가 꿈꾼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축출하고 다니자 몇몇 제자들이 이를 문제 삼은 일이 있습니다. 저들은 자랑스럽게 말하기를 ‘우리’ 가운데 속하지 않은 자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해서 귀신을 축출하는 것을 놔두고 볼 수 없어 금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예수께서는 격하게 말씀하십니다.

“소자 중 하나라도 미혹하여 넘어지게 하면 연자멧돌을 메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나을 것이다.”
“두 손을 가지고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이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버리라.”

예수께서는 왜 이렇게 격하게 말씀하셨을까? 나보다 약하거나 다르다 해서 그들을 모욕하고 배척했을 때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인지를 경고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차별과 배타 그리고 그로 인해서 일어나는 증오와 테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불(火)과 결부시켜서 “너희 안에 소금을 치고 화목하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다른 사람을 배척하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타자를 차별하고 배척하는 기제를 먼저 자신에게도 돌리도록 하신 말씀입니다.

* 평소 세상일을 냉철하게 말하던 사람들이 정치판에 끼어들어 무조건 내편은 옹호하고, 상대를 향해서는 저주와 악담을 쏟아내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입니다. 불은 소멸시키고, 정화시키는 기능이 있습니다. 염증을 막아주기도 하지요. 소금은 보존하고, 맛을 내고, 깨끗하게 하고, 부패를 막아줍니다. 김치를 담을 때 먼저 소금으로 배추의 순을 죽이는 것처럼, 소금은 강한 기운을 죽여서 순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불과 소금은 동료 인간과의 화목을 위해서 제자들이 스스로 치루고 연단해야할 자기 정화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화목을 위해서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불로 연단하고, 소금에 절이듯 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최후 심판 때에는 “누구나 다 불소금에 절여질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자기 의가 그렇게 독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바라는 바도 그러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처음에는 이방인들이고, 초신자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어엿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유년기를 지나 성년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처신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로 갈리어서 유치할 정도로 파당을 지었습니다. 바로 그런 사람들을 향해 바울은 자신이나 아볼로는 복음의 씨를 '뿌렸고', 자라도록 물을 '주었을' 뿐 그것이 '자라게 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라고 합니다. 편 가르기를 단호히 배격한 것입니다. 왜? 복음의 정신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 년 전에 500여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입도했을 때 그들에 대한 온갖 비방과 유언비어를 유포시켜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일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같은 일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만큼 정신상태가 불안정하고, 난폭하고, 너그럽지 못하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그렇게 불안정하고, 난폭하고, 너그럽지 못한 정신 상태를 먼저 정화시키지 않으면 다양한 사람으로 구성된 나라에서 평화를 누리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불로 지지고 소금을 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을 향해서는 평화를 주문합니다. 자신의 특권을 옹호하기 위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나라의 장래는 상관없이, 분열을 책동해 자기 이익을 지키려는 자들. 정치철학이나 미래를 향한 비전은 없고, 오로지 정치공학만 난무한 현실이 그러합니다.

복음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나보다 약한 이들뿐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관용하고 환대하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너 자신의 치부를 먼저 불로 지지라, 소금을 치고 화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분쟁을 일삼고, 차별하고, 나와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순물들은 다른 사람이 소멸시키지 못합니다. 스스로 불로 태우고, 소금으로 정화시킬 때만이 그토록 바라는 평화는 우리 안에 깃들게 됩니다.

* 최근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은 가장 아끼던 차남이 미국에서 미성년 성폭행 혐의로 재판받게 되자, 그에게 주어진 모든 직함과 특권을 박탈했다고 합니다. 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단행한 것이지요. 그런 단호함이 영국을 떠받드는 힘일 것입니다. 복음은 삶에 지친 나를 위로하는 손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 상처에 소금을 치고 불로 지지도록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하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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