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을 버려야 다가오는 하나님의 희망(합1:1-11; 빌3:13-4:1; 마23:13-24 / 0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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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에 롯의 아내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의 도시 소돔-고모라 성을 벗어나라고 하셨음에도 롯의 아내는 자꾸만 뒤돌아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창19:20). 왜 그랬겠습니까? 쌓아둔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다 그랬습니다. 하박국이 처한 상황이 이와 유사합니다. 이 무렵 공룡 같은 신흥 제국 바빌론이 일어나 약소국 유다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습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은 제 몫 챙기는 데만 여념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쾌락과 방종에 도취되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힘없는 백성들만 고초를 겪습니다.
하박국은 이처럼 앞이 캄캄한 상황에서 끌어 오르는 가슴으로 고민하던 중 하나님께로부터 대답 얻습니다.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합2:4b)고. 구약에서 ‘의인’이란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가치기준으로 삼고 사는 사람입니다. 때문에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가 걱정할 일은 믿음이 식은 것을 염려해야지, 세상이 혼탁하고, 정치가 혼미한 것 때문에 낙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정의가 뒤틀리고, 나라가 풍전등화일지라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것이지, 희망부재의 일차적인 걱정거리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하박국의 심령에는 희망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합3:17-19a).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민국 모두가 가난한 시절에는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같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은 하는데 저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기득권 강화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요즘 정치를 보면, 있던 희망도 사라져버릴 것만 같습니다. 최소한의 윤리도 철학도 정직함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한 기업이 국가를 쥐락펴락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더 실망스러운 것은 한국의 기독교가 이미 기득권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제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어주지 못하는 집단이 된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교회 성장론’이 득세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기독교가 매력을 잃었기 때입니다. 그래도 성장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가 있기는 합니다. 샤머니즘에 편승한 기복주의 교회들과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모이는 일종의 사교클럽과 같은 교회입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를 빙자해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저주의 굿판을 벌인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서 “화 있을 지어다”라고 경고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에 의하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희망인 십자가를 원수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빌3:18-19). 그들은 자신들이 지키려는 것들로 인해 세상을 파멸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빌3:13-14) 달려가지 않으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과 다를 바 없게 됩니다.
들풀은 생명력이 강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소금기가 있는 물에 닿으면 시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것을 지키려는 순간 믿음은 시들어버립니다. 믿음은 시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고약한 것으로 변질됩니다.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가난한 이들을 늑탈하고, 온갖 불의가 그들 주변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신비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