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땅을 산 자의 땅으로(삼상 28:3-14; 행 15:1-11; 막 5:1-20 / 13.7.28)
한국기독교장로회 삼일교회
03381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로 44-2 (녹번동)
연락처 : 02-386-6257 │이메일 : samilchprok@gmail.com
Copyright 2024. 삼일교회 all rights reserved.
한국기독교장로회 삼일교회
03381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로 44-2 (녹번동)
연락처 : 02-386-6257 │이메일 : samilchprok@gmail.com
Copyright 2024. 삼일교회 all rights reserved.
마침내 사울의 정적 사무엘이 죽고 이스라엘은 사울의 나라가 됩니다. 그리 되자 사울은 그 첫 번째 정책으로 나라 안에서 접신하는 자들과 박수들을 모두 추방합니다. 백성들에게 나름으로 나라를 정화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든 차에 불레셋이 최후 결전을 위해 사울 가까이에 치게 됩니다. 잔뜩 겁을 먹은 사울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했으나 답을 얻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울을 버리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조급해진 사울은 변장을 하고 신접하는 여자를 찾아가 갑니다. 조금 전에 나라를 정화시킨다며 자기가 추방했던 자를 찾아 가는 이율배반적인 일을 한 것입니다. 사울은 신접하는 여자에게 사무엘을 불러내라고 합니다. 죽은 사무엘의 힘을 빌리려는 수작입니다. 평소 사울은 정적이 살아 있는 꼴을 못 봤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사무엘입니다. 자기에게 비판적인 선지자들은 모두 죽이거나 적으로 돌렸습니다. 충성스런 다윗까지도 죽이지 못해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정적이 모두 사라졌는데, 이제는 죽은 정적의 혼백이라도 불러내서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산 자와는 협력을 못하고, 죽은 혼백의 도움은 받으려는 사울입니다.
사울만의 얘기가 아닙니다. 오늘날도 권력에 중독된 자들은 죽은 자들을 불러내서 다시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합니다. 대한민국 성공의 역사를 쓰겠다는 사람들은 죽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끈질기게 불러냈습니다. 그들은 죽은 노무현도 불러내서 다시 죽이는 일을 했습니다. 소위 NLL을 포기했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권력을 쟁취하게 됐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습니다. 과연 죽은 자들을 이용하여 권력을 농단하는 자들에게서 나라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미래는 고사하고 정치 도의나 신의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모략과 술수와 억지 주장과 치고 빠지기 등 암울한 그림자만이 춤을 추는 나라가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산 자의 땅이라기보다 죽은 자의 땅입니다. 더러운 귀신 들린 자가 공동묘지를 삶의 터로 삼은 게 그걸 말합니다. 그것도 그냥 귀신이 아닌 떼거지로 활동하는 군대귀신입니다. 예수께서 이 군대귀신을 추방하자 뜻밖의 사태가 벌어집니다. 이 도시 사람들이 몰려와 예수가 그곳에서 빨리 떠나도록 밀어낸 것입니다.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이 도시의 산업이 군대귀신에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산 자를 무덤에 묶어 놓고, 번영의 노래를 부를 자들입니다. 저 옛날 죽은 사울이 예수님 당시 갈릴리에서도 여전히 위세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에서도 지금 그걸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예수 앞에서는 그처럼 견고한 군대귀신도 버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레기온처럼 무소불위의 힘을 지녔을 지라도 예수 앞에서는 그 힘을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능력을 믿고 분명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자칫 죽은 자의 땅이 될 수도 있는 할례 문제를 산 자의 땅이 되게 하는 지혜를 모은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에 문제가 많은 것은 그만큼 분출하는 에너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 에너지를 어떻게 창조적인 에너지로 모으느냐는 지도자들의 몫이고, 정치의 몫입니다. 하지만 죽은 자를 불러내는 방식으로는 결코 산 자의 땅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서로를 살리려는 의지로 머리를 맞대야 산 자의 땅이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의 명령이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