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처럼 순한 사람이 되게 하다(삼상 13:5-14; 행 8:26-40; 눅 23:13-25 / 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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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입니다. 당시는 전쟁을 하나님의 통치행위로 여기는 때이기도 합니다. 전쟁은 ‘시작’과 ‘끝’이라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관련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때문에 전쟁에 임하는 왕이나 장수는 반듯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마침 불레셋이 막강한 무력을 앞세워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위급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사울로서는 어떻게든 전세를 바꿔야만 했습니다. 전쟁 개시를 위해 하나님께 속히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 사무엘은 약속한 날 7일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급해진 사울은 자신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큰 죄가 됩니다. 뒤 늦게 나타난 사무엘은 사울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며 책망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울의 자식들은 왕으로 세우지 못한다는 선언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사울의 제사 행위가 신권에 대한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터무니없는 일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했다는 점에서 사울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하는 장면 역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예배시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라고 사도신조를 고백합니다. 온 세계 교회와 성도들도 같은 신조를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빌라도는 어떤 관계이기에 그런가? 예수께서 재판받으신 기록에 의하면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빌라도가 예수를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은 없습니다. 죄가 없으니 당연히 풀어주어야 합니다. 그런 빌라도가 마지막으로 한 일입니다. “저희가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눅 23:23) 법이 아닌 다중의 소리가 이겼다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총독으로서 최고의 재판관입니다. 재판관에게 신율이 있다면 법의 정의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는 군중의 환심을 사려는 어리석은 일을 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는 예수를 죽인 책임이 없다며 물로 손을 씻기까지 했습니다. 빌라도의 무책임하고 비열한 행위가 하나님께서 보낸 이를 죽인 것입니다. 누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 권력의 어리석음, 난폭함,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빌립과 에디오피아 내시의 이야기는 죽이는 이야기가 아니라 살리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단순히 초대교회에서 이방의 고위직인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놀라운 사건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방인에 거세한 내시라면 당시 유대인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부적합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초대교회가 그만큼 사람의 출신이나 신체적인 장애를 문제로 삼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곧 죄악으로 인해 굽어진 모습을 배척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두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은 전적으로 성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인간의 관습이나 문화적 편견의 개입을 차단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죄악의 역사는 언제나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함으로서 비롯됩니다. 반면에 복음은 인간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려는 의지를 꺾어 놓고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면 늑대처럼 사나운 사람들이 양처럼 순한 사람으로 변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전보다 더욱 강한 사람이 됩니다. 인간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복음에 의해 사나운 성정이 꺾이고 순한 양처럼 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