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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은 북이스라엘 7대 왕으로 22년간 통치했으나, 가장 사악한 왕으로 정평 난 인물입니다. 그는 국가 번영에 대한 의욕이 남다르게 강열했습니다. 그가 바알을 앞세워 전횡을 휘두를 때 홀연히 나타난 인물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비를 관장하는 신은 바알이라고 믿고 있는 아합에게, 실제로 비를 내리시는 분은 야훼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합니다(왕상 17:1). 하지만 엘리야는 아직 아합과 정면 대결할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어린 예수를 광포한 헤롯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시키신 것처럼,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의 손이 미치지 않는 빈들로 피신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엘리야는 사마리아를 떠나 빈들에 가서 믿음을 연단합니다. 그리고 숨어만 지내던 엘리야가 아합에게 다시 나타나서, 바알이 참 신인지 야훼 하나님께서 참 신이신지 시험하자고 도전장을 냅니다. 저 유명한 갈멜산 대결은 이렇게 해서 이뤄진 것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나타날 무렵, 설화자는 아합의 행적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려 3년을 가뭄이 계속되자 아합이 궁내대신 오바댜에게, “그대는 나와 둘이서 전국을 다녀 보자. 어쩌다가 풀이 있는 곳을 만날지도 모르니 모든 샘과 계곡을 샅샅이 뒤져 보자. 어떻게든 말과 노새를 살려야지 그냥 죽일 수는 없지 않겠느냐?”(왕상 18:5) 라고 합니다. 백성들은 기갈과 흉년으로 죽어가는 판에 아합의 관심은 오로지 제가 먹을 짐승과 군비확장뿐이었습니다. 서민들은 등골이 빠지는데, 오로지 부자들과 대기업만 살리려는 사람들, 나라를 앞세워 제 잇속만 챙기려는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죄악의 길만을 고집하는 아합을 만나고 살아남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때 엘리야는 아합의 궁내대신 오바댜에게 “내가 섬기는 만군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오. 나는 오늘 꼭 아합을 만날 것이오.”(왕상 18:15) 라며 ‘오늘’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 엘리야의 ‘오늘’이라는 말에서 강렬한 메시지를 접하게 됩니다. 엘리야는 특출한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의 처음 모습은 혈기만 앞섰을 뿐입니다. 만용인 것이지요. 저 옛날 모세도 그랬습니다. 모세는 혈기 충천하여 동족이 당하는 억울함을 풀어주려다 깊은 좌절을 겪고 미디안 광야에서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소극적인 믿음에서 적극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기까지 광야에 가서 은신하며 강건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기 생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옥중에서 바라본 빌립보 교인들도 그러했습니다. 아직은 어린 아이와 같은 믿음입니다. 든든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흔들리거나 옛 생활로 되돌아가지는 않겠지만, 바울이 죽게 되면 그들을 지켜주는 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각자의 구원을 성취하기를(빌 2:12) 간곡히 부탁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란다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어려서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점차 자신과 가족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요즘 우리 자녀들 가운데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것은, 책임적인 성인으로 자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된 데는 부모의 책임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렇게 만든 요인도 적지 않습니다. 자녀들을 지나치게 시험으로 억압해서 세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오늘 내가 (아합을) 만나겠다’고 말한 저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 온전히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된 믿음에서 입니다. 그리하여 어떤 역경이나 두려움도 피하지 않고 직면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가로놓인 또 다른 아합을 향해, ‘오늘 만나겠다’고 도전할 수 있을 만큼 든든한 믿음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