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사슬로부터 해방된 삶(출 34:10-16; 살전 2:9-12; 마 5:21-26 / 1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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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 사건 후, 하나님께서는 파괴된 계약을 회복하기 위해 백성들과 재계약을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깨뜨려버렸던 돌판을 다시 새기게 합니다. 모세는 깨뜨렸고, 하나님께서는 다시 만들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가 대조되는 장면입니다. 신앙의 역사는 인간은 깨뜨리고, 하나님은 회복시키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두 번째 계약에서는 처음 계약 때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더 가까이 계신 모습입니다.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라”(출 34:14). 구약에서 ‘이름’이 그 존재의 속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봐서 질투의 속성을 지닌 하나님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제1계명과 일치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 땅의 거민과 어떤 계약도 맺지 말라”고 합니다. 동맹을 맺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시 민족간의 동맹은 그들의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가장 큰 위협이 바로 이방인과의 친교‧교류 즉 동맹에서 유입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진노보다 자비가 크신 분입니다. 이웃과의 관계에서 시시비비보다 먼저 자비를 요청하는 예수님의 말씀 역시 그러합니다. 바울 서신의 말씀 또한 출애굽기 말씀의 연장선에서 보아도 될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살전 2:12) 바울의 열정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에서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열정은 우리의 열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세속의 욕망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일본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세요?” “나이 70이 된 때에 건강을 위해 클럽의 수영장을 다니다가 늙은이의 몸을 젊은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싶어 그만뒀습니다.” 늙은 몸인데도 욕망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고백입니다. 몸은 욕망 덩어리입니다. 살아 있음은 욕망하고 있음입니다. 죽으면 욕망도 사라집니다. 욕망이 없는 몸은 감각도 희로애락도 없습니다. 인간은 살아 있을 동안은 욕망의 지배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욕망은 스스로 통제하는 일이 없습니다. 윤리나 도덕이 없습니다. 통제되지 않는 욕망은 악귀들의 세계입니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이성의 기능이 있어서 자신의 욕망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뒤틀린 이성은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몸의 욕망이면서 마치 영적인 갈망인 것처럼 자신을 위장하기도 합니다. 신앙 생활하던 분들이 중간에 낙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체로 영적인 갈망이 아닌 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신앙의 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본질적으로 늙고, 병들고, 추해지고, 죽는 것을 거부합니다. 인간은 욕망이 있음으로 살지만, 욕망이 과부하되면 죽음을 불러들이는 암 덩어리가 됩니다.
참된 믿음은 욕망을 절제합니다. 내 앞에 서 있는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런즉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6-17) 새로운 피조물은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존재입니다.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존재입니다. 내 힘으로는 욕망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의 속사람, 욕망의 사람이 거듭나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을 구속하는 욕망으로부터 자유케 됩니다. 저 옛날 죄 많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필요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자비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자비로 사는 것임을 안다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욕망을 절제하고 자비를 실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