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복음(애 2:1-7; 고후 2:1-4; 막 12:1-12 / 12.4.1)
한국기독교장로회 삼일교회
03381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로 44-2 (녹번동)
연락처 : 02-386-6257 │이메일 : samilchprok@gmail.com
Copyright 2024. 삼일교회 all rights reserved.
한국기독교장로회 삼일교회
03381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로 44-2 (녹번동)
연락처 : 02-386-6257 │이메일 : samilchprok@gmail.com
Copyright 2024. 삼일교회 all rights reserved.
애가서는 슬픔, 진노, 살육, 근심, 애통, 미움 등 죽음의 언어가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어둡고, 답답하고, 우울한 내용 일색입니다. 400여 년 동안 지속된 유다 왕국이 허망하게 무너졌으니 얼마나 원통하겠습니까. “여호와께서 처녀 시온의 성을 헐기로 결심하시고 줄을 띠고 훼파함에서 손을 거두지 아니하사 성과 곽으로 통곡하게 하셨으매 저희가 함께 쇠하였도다.”(애2:8) 예루살렘은 침략자 바빌론이 파괴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파괴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빌론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심판을 강조한 것은 하나님을 원망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애가서는 탄식으로 가득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마치 지하수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의 특징이 이러합니다. 인간이 자만할 때는 항상 무서운 심판을 초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더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자각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희망의 빛이 드러났습니다. 그 빛을 바라본 사람이 비록 소수일지라도, 바로 그런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다시 가기로 약속하고도 가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고린도교회가 파당을 짓고, 바울을 비난하는 이들이 있어 이를 수습하기 위해 방문하고 돌아왔으나, 그 뒤에 사태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이럴 때 바울은 자기가 다시 방문한다면 치유보다는 상처만 더 안겨줄 것을 염려해서 방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문제 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믿을 수 없는 사람, 약속도 못 지키는 사람, 일구이언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기쁨을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려고 합니다.”(고후 1:24) 바울은 결코 성도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복음을 위한 동역자로 여겼습니다.
예수께서 유대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들려주신 포도원 이야기 는 예수 자신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의 운명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위탁된 나라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포도원 관리를 맡기고 떠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농부들은 그 주인에게 무례하게 행했습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막다른 데까지 갔습니다. 이야기를 여기까지 전개하신 예수께서는 이 악한 농부들의 결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를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 21:43) 관리인이 그 소임을 다하지 못했을 경우 반드시 ‘위탁의 회수’라는 심판이 따릅니다. 이 사실, 곧 심판을 알리는 것이 복음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포도원 농부의 행태는 오늘도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고삐 풀린 탐욕은 무한대의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탐욕은 하나님의 아들까지 죽일 정도로 사악한 질병입니다. 이처럼 사악한 행위가 범람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비관할 수도 있고, 냉소할 수도 있습니다. 세상을 닮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복음이 살아 있다면 심판의 경고등을 켜야 합니다. 좋은 소식만이 복음은 아닙니다. 심판 역시 복음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파란등은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빨간등은 가던 길을 가로막습니다. 대신 생명을 지켜줍니다. 복음에서 심판 이야기는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경고등을 켜신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