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창 50:15-21; 고전 12:12-18; 막 8:11-21 / 1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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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로 내려온 야곱은 마침내 수를 다하고 열조에게로 돌아가게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요셉의 형제들은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전에 자신들이 동생 요셉에게 행한 죄로 인해 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창세기는 이때 일을 전하기를,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창 50:15) 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피할 수 없는 죄의 실상을 봅니다. 인간은 동료 인간에게서 죄를 용서받았다 할지라도 죄 자체는 결코 지워지지 않습니다. 용서받고 잊은 것 같았던 죄로 인한 두려움이 어떤 계기가 되면 되살아납니다. 그리하여 지난날의 죄는 계속해서 두려움으로 옥죄게 되고, 두려움은 더 큰 죄를 불러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죄가 다시는 되살아나지 않도록 할 수 있는가? 요셉의 말에서 그 단서를 보게 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요셉은 형제들의 죄악을 자기가 용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형제들에 대한 죄를 기억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예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대신 만백성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섭리로 기억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 안에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이걸 받아들이는 게 바로 신앙입니다. 우리는 이런 신앙을 지님으로서 죄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인간의 죄악도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동인이 됩니다.
오늘날 남과 북의 서로를 향한 적개심은 악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철저한 보복을 다지는 것은 남과 북이 다를 바 없습니다. 애당초 죄에 대한 인간의 용서는 제한적입니다. 용서했다가도 다시 되살아나는 게 죄악입니다.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악을 선으로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지난날의 죄악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용서받고 새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의 누룩,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해 봅시다. 헤롯의 누룩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헤롯이 지닌 세상에 대한 의제들입니다. 규모, 권력, 부, 명성, 화려함, 아첨하는 무리 등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명분과 실제가 다른 위선입니다. 자신을 향한 내적 동기는 없고, 다른 사람을 심판하는 도구만 지닌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이나 해롯이나 저들의 기억 가운데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저들은 죄악을 반복해서 기억함으로서 기득권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지난날의 원한을 반복해서 기억하도록 강제하는 이들이야말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교회론 가운데서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유대인-헬라인, 종-자유인, 이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종교적으로 상극의 대척점에 놓인 관계입니다. 오직 서로를 향해 죄악만이 기억되는 관계입니다. 이들이 한 성령으로 세례 받고, 한 성령을 마시게 했다는 게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은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