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을 입기 위해(2)(삼하 7:18-24; 갈 3:1-14; 눅 1:57-66 / 13.12.25)

관리자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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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늦도록 태기가 없던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았을 때입니다. 그때까지 말문이 막혀 있던 사가랴가 천사 가브리엘이 일러준 대로 서판에다 ‘요한’이라고 쓰자 사가랴의 혀가 풀려서 말을 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누가는 이 일에 대해 “주의 손이 저와 함께 하심이라”며 각별한 관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일생 동안 말단 제사장밖에는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 사람입니다. 누가는 그런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을 가리켜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의인이라면 의롭게 산 사람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가랴 부부의 경우로 미루어 보면, 의인이란 사람과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히 여기며 산 사람입니다. 시대에 영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소망하며 산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히 복종하며 산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가랴가 뜻밖의 행운을 맞이합니다.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 하는 제물을 분향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가 성소에 들어가 향단 앞에 섰을 때 환상 가운데서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 증표로 사가랴의 입을 막가 벙어리가 되게 합니다. 성소 밖에서 축복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은 이 일로 사가랴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눅 1:22). 당시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기름은 철철 넘쳐났으나, 영적 감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지내야 했습니다. 이런 불신 가득한 영적 암흑기에, 이름 없는 제사장과 그를 기다린 일단의 백성들 사이에 깊은 신뢰가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입니까? 시대가 어둡고 혼탁해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가랴였기에 가문의 명예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요한으로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다윗도 사가랴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나단 선지자로부터 자신에게 내린 하나님의 축복을 듣고, 성소에 올라가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리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두 부분으로 이뤄진 다윗의 기도에서 “주 여호와여”를 무려 다섯 번이나 하고 있습니다. 독일어 주석 성경은 다윗의 “주 여호와여”를 하나님의 권세에 온전히 복종하겠다는 복종의 표시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삼하 7:19)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라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다윗 자신을 사랑하시되 ‘인간의 연약함을 살피시면서 사랑해주셨다’는 뜻입니다. 다윗도 어쩔 수 없이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질투하는 인간이었고, 유혹에 넘어지는 인간이었습니다. 좋은 가문의 출신도 아닙니다. 양을 치는 아버지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버지의 주목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 나라의 왕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으니, 이거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간 이상의 어떤 초인성을 요구하셨다면, 그는 결코 통일왕국의 왕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처럼 연약한 자신을 “인간의 규례대로” 사랑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감사와 찬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 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리라”(사 60:22).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주목의 대상일 수 없음에도,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해내신다는 예언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 분이 어떻게 인류의 희망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처럼 연약한 예수를 통해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바울에게서 예수의 십자가는 인간의 옳음을 전복시키고, 하나님의 옳음을 드러낸 사건입니다. 아기 예수를 영접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각 사람이 자기 머리에 쓴 면류관을 벗어 주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몸 낮추고, 마음도 낮추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맞이할 수 있도록 간절히 소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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