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희망(사 35:1-4; 계 22:12-17; 눅 1:67-80 / 1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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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의 말씀은 한 편의 수채화와 같습니다. 하지만 암울한 시대 배경이 이 말씀에 녹아 있습니다. 수리아-에브라임 연합군이 밀려들자 유다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백성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허둥대며, 숨을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절박한 때, 당시 유다 왕 아하스는 겁쟁이였습니다. 신하들과 머리를 맞대고 짜낸 대책이라는 게 앗시리아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사야는 극구 말렸습니다. 승냥이를 막으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어떻게든 목숨이나마 구명하고 싶은 아하스에게 연합군을 두려워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아하스에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직접 징조를 보여주실 것이라며,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말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인 험한 시대에, 보호자 없이 처녀가 낳은 아이와 같을 처지일지라도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으라고 한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하스는 제 고집대로 앗시리아를 불러들여 수리아-에브라임 연합군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유다는 끝내 앗시리아의 종노릇을 해야 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딱 들어맞은 것입니다.
아하스에게 실망한 이사야는 재야로 물러나서 예언활동을 합니다.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 어디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없는 백성들을 향해 시온을 향한 꿈과 이상을 지닐 것을 독려했습니다. 그는 무릉도원과 같은 나라를 바란 게 아닙니다. 소경이 보고, 귀머거리가 듣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절름발이가 사슴같이 뛰는 나라입니다. 천대받는 이들이 함께 기뻐하는 나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많은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소멸되지 않고, 그 생명이 존속될 수 있었던 것은, 이사야처럼 고단한 삶을 희망으로 해석한 이들의 신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놀랍게도 오늘날 세속사회 역시 희망이 넘쳐납니다. 마케팅 재료로 사용하는 희망 말입니다. 각종 이벤트에는 어김없이 희망이 등장합니다. 영적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희망입니다. 자기 최면에 걸려 현실의 고통을 회피케 하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성서가 말하는 희망은 하나님에 의한 희망입니다. 고통스런 현실을 기억하되, 고통을 넘어서는 희망을 말합니다. 죄악과 절망을 구속과 창조의 역사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굳건히 믿는 믿음에서 오는 희망입니다. 그리하여 성경의 희망은 고난을 창조의 에너지로 수렴합니다. 세속사회가 말하는 희망은 대게 요행을 바라거나, 심리학적인 희망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희망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희망, 곧 임마누엘에 의한 희망입니다.
사가랴의 찬양시 역시 이사야의 희망처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언자 전통이 사라진 암울한 시대에, 그 사라진 전통을 사가랴가 잇고 있습니다. 이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사역을 맡은 자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하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사가랴가 지녔던 언약에 있습니다. 곧 임마누엘의 믿음이 확고하면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살아갈 힘이 솟습니다. 반면에 언약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미래도 없습니다. 이사야와 사가랴의 예언이 초림하실 아기 예수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다면, 계시록은 당차 오실 재림 예수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계 22:12a) 처음과 나중이신 분, 그분은 당신이 준비한 나라의 희망을 향해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성탄절은 세속사회가 유혹하는 희망이 아닌, 예수께서 주시는 희망을 맞아들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