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 자국(슥 12:10-13:1; 엡 1:15-23; 눅 19:20-27 / 13.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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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스가랴가 활동하던 무렵 구약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예루살렘과 유다가 구별되어 따로 불리기 시작합니다. 바빌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쁜 마음으로 힘을 모아 성전을 건축하여 마침내 기원전 515년에 봉헌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 생긴 갈등의 내상은 커서 점점 날카롭게 부딪힙니다. 이럴 때 스가랴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화해를 꿈꾸며 동포들에게 선포합니다. 큰 전쟁을 겪은 후에 양측이 손잡을 것이라는 예언입니다(12장). 12-14절에는 ‘따로’(לדב)가 11차례 나오는데 이것은 예루살렘과 유다가 얼마나 아파야하는지 슬픔의 강도와 범위를 보여줍니다. 이 때 유명한 메시아 예언, ‘그들이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한다’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무고하게 찔리고 죄없는 죽음이 있을 때까지 예루살렘과 유다는 칼날을 곧추 세울 것입니다.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사이의 갈등은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깁니다.
누가복음 19장의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 여정에는 예수의 행적과 말씀이 뒤섞여있습니다. 여기의 일관된 논지는 분명합니다. 삭개오 이야기와 므나 비유는 별개의 교훈이 아닙니다. 예수를 보려고 온 ‘많은 사람’과 한 귀인의 ‘종 열 명’은 같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균등합니다. 삭개오는 ‘많은 사람’과 달리 예수를 보려고 뽕나무에 올라가고, 첫째와 둘째 종은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예수가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초대하신 것은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긴 종들에게 열 고을, 다섯 고을을 다스리도록 권세를 주는 것과 연관됩니다. 그러나 므나의 비유는 더 나아갑니다. 한 므나를 그대로 가져온 셋째 종에게 악한 종이라고 꾸짖고 한 므나를 빼앗아 가진 자에게 줍니다. 삭개오와 두 종의 성과는 얼핏 듣기에 공적주의처럼 보일 수 있어서 불편하지만 그것은 업적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복음에 대한 자발적인 태도를 암시합니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은 주인의 힘을 해고할 수 있는 권력으로 사용하지 않고 고용인을 동업자로 대하며 감사와 칭찬을 유도하였다고 합니다. 직원들의 자발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샘 월튼의 경영철학은 결과적으로 월마트를 세계적인 유통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습니다. 한 므나를 잃으면 직장에서 잘리지 않을까 조바심과 불안으로 주인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고용인에게 자발적인 에너지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곧 자발성이야말로 복음의 핵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본문은 임직자들을 향한 권면의 말씀입니다. ‘마음의 눈을 통하여 부르신 소망이 무엇인지’(18절) 깨닫기를 빕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하나님을 더 알도록 인도해주시리라 믿습니다(17절). 임직식은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이 기분 좋은 자극입니다. 새 옷을 입으면 몸과 마음이 가뿐합니다. 요즘과 달리 기성세대는 보통 명절에 새 옷을 입었기 때문에 명절의 포근한 기억과 자극은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새롭게 살아납니다. 이렇듯 상큼한 자극은 자발적인 기운을 북돋아 감사와 기쁨이 저절로 뒤따르게 합니다. 그럼으로써 새 옷의 기분 좋은 기억은 선명한 자국이 되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세 본문은 각각 어떤 자극이 있으면 필연코 자국을 남긴다는 자명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한 므나를 작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열 므나, 다섯 므나를 남긴 종들처럼 자발적인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하늘의 충일한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깊은 적대감을 화해와 용서로 바꾼 스가랴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 스가랴의 뜻과 같이 ‘여호와께서 기억하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 생활의 선명한 자국을 만들어내게 하는 복음의 자발성을 자극하는 말씀입니다.
(김창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