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2026. 5. 3. / 렘 23:1-4; 벧전 5:1-11; 요 21:15-19

관리자
20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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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3일 주일예배

부활절 다섯째 주일 ‧ 어린이 청소년 주일

렘 23:1-4; 벧전 5:1-11; 요 21:15-19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오늘 요한복음 본문은,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라는 언급으로 시작합니다(요 21:15). 디베랴 호숫가에서 이른 아침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주님께서 불과 음식을 미리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잡은 생선도 가져오게 하셔서, 모두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 식사를 마련하셨습니다. 이 단락의 핵심인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에 앞서, 주님께서 손수 마련하신 것으로 제자들이 밥을 먹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치고 허기진 제자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먹이신 주님의 행위는, 주님의 양떼를 먹이는 일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경험하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목양에는 양떼의 생명과 건강을 보살펴주려는 마음이 담겨야 합니다. 이 대화에서 주님과 베드로가 다른 단어를 쓴 데서 긴장이 발생한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님은 희생하는 사랑을 말씀하셨으나(ἀγαπᾷς με), 베드로는 형제적인 우애로 대답했다는 것입니다(φιλῶ σε). 그러나 이 대화의 목적은 주님의 말씀에 또렷이 나타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떼를 맡기시려는 것입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사실 베드로와 제자들이 디베랴 호수에 고기를 잡으러 온 것은 옛 삶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라고 봐야 합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요 21:3)라는 베드로의 말은, 과거 어부로서 고기를 잡았을 때처럼 돈을 벌기 위해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따라온 다른 제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이나 만났지만, 소명을 아직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 모든 일이 한밤의 꿈처럼 여겨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 번째 만남은 달랐습니다. 주님의 행위와 말씀이 그들이 해야할 일을 정확하게 지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에게 따뜻한 밥을 먹여주신 것처럼 주님의 양들을 먹이는 일, 주님을 부인했던 기억으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베드로를 회복시켜 당신의 양떼를 돌보게 하신 것처럼 주님의 양들이 자유로워져 주님을 섬기도록 하는 데에 베드로와 제자들은 온 삶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삯꾼은 목자가 아니며, 양도 제 양이 아니기에, 이리가 습격해 올 때면 도망을 간다고 하셨습니다(요 10:11-15). 이 말씀에는 인간사의 비극이 투영돼 있습니다. 선한 목자로 자처하는 임금과 세도가들이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기는커녕 백성들을 착취하고 해치는 일을 반복해온 역사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사로운 욕심으로 시민들을 사지로 내모는 지도자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선한 목자인냥 행세하지만, 실상은 삯꾼에 불과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묻히고 말았지만, 이란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반정부 시위에서 7천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이란 인권활동가통신 HRANA, 2월 15일). 이란의 최고 종교지도자와 군부가 체제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폭력으로 짓밟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들을 이란의 수호자로, 이란 민중의 목자로 광고하는 현수막을 이란 전역에 게시해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선한 목자일까요? 진정한 목자에 대한 민중의 염원을 증폭시키는 악한 목자(렘 23:2, 4), 부덕하고 실패한 지도자는 아닐까요? 스스로 미화하는 선전 현수막 너머에서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나 러시아의 교회당에는 성소와 회중석을 구분하는 성화벽(聖畫壁, Iconostasis)이 설치돼 있습니다. 거기에는 교회를 위해 삶을 헌신한 이들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대개 후광(後光)이 표현돼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런 성화 대부분이 후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그려졌다는 점입니다. 이는 성화의 인물들이 삶과 신앙과 헌신에 대해서 교회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지, 그들 스스로 지도자나 위인을 자처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오늘날까지 예배당에 성화벽을 보존해온 동방 그리스도교 전통에서는, 그 성화벽을 연합의 상징으로 이해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교회를 위해 목숨을 버린 이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고, 지금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도 마지막 날에 주님과 연합하게 되리라는 소망이 성화 속 인물들의 빛나는 모습에 담겨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의 후광은 미화의 수단이 아니라,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이르신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요 21:18) 우리의 과제는, 베드로의 죽음을 부활하신 주님의 빛 아래에서 사유하는 데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살다, 주님 안에서 죽은 이들은 모두 주님과 연합하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가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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