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구주가 살아 계시니 / 2026. 4. 19. / 사 43:8-13; 행 10:34-43; 요 20:19-31

관리자
2026-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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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19일 주일예배 

부활절 셋째 주일예배, 4.19혁명기념주일 

사 43:8-13; 행 10:34-43; 요 20:19-31 

나의 구주가 살아 계시니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을 보았다는 제자들의 말을 부정하면서,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는 표현으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 도마의 반응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흔히 갖는 생각 하나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육체적인 소생으로 상상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독일 신학자 미하엘 벨커(Michael Welker)는, 요한복음이 부활하신 주님의 ‘현현적인 특성’과 ‘감각적인 특성’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하나님의 계시』, 176-177). 육체성을 초월하는 모습과 육체성을 확인해주는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던 방에 들어오셨습니다(요 20:19). 이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이 보통 사람의 신체와는 달랐다는 뜻입니다. 이와 동시에 주님은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셨고, 못 자국이 난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보여주기도 하셨습니다(요 20:20). 


마가복음 16장 12절은, 부활하신 주님이 시골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각각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셨다고 쓰고 있습니다. “다른 모양”(ἑτέρᾳ μορφῇ)이란, 단순히 겉모습이 달랐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본질을 담고 있는 형태나 형상이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 사도 바울은 ‘주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라고 했는데, 이 ‘본체’라는 말이 여기서 ‘모양’이라고 번역된 ‘모르페’(μορφή)라는 단어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두 제자가 자신들과 동행하는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한참 동안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눅 24:16). 이후 저녁식사를 할 때 그분이 예수님이란 것을 알게 됐지만, 그분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눅 24:31). 벨커는, “이 본문들이, 부활이 부활 이전 예수의 단순한 물리적 소생이라는 인상에 대해서 강력하게 대항하여 싸운다”고 적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이전과는 다른 분, 다른 본체가 되셨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라는 도마의 고백은, 그가 주님의 ‘본체’,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르페’를 대면했기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도마가,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제자들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은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셨을 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믿지 못했던 것뿐입니다. 이 점에서 그는 경험하지 못한 것을 믿지 못하는 일반적인 사람을 표상합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 부활의 증언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이런 생각을 마음에 품을 것입니다. 따라서 도마는 주님의 부활을 타인에게 증언하는 사람이기에 앞서, 부활의 증언을 듣게 될 모든 이들의 대표가 됩니다. 그는 주님을 직접 보고 믿었던 마지막 세대이면서, 동시에 주님을 보지 않고 믿는 길을 예시하는 자입니다. 그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은, 주님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게 될 다음 세대에 대한 주님의 축복입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사 43:8 참조)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란 누군가의 증언을 통해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제자들 중에는 아직 그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대개 믿지 못하고 있다가, 자신 앞에 나타나신 주님의 ‘본체’를 본 다음에야 주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는 것은, 죽은 사람이 소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 초자연적 사건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핵심을 놓치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님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행 10:41-43 참조). 이제 주님은 말씀을 통해, 곧 성서와 증언을 통해 당신의 사랑과 은혜를 알리시며,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다는 건 이런 것입니다. 그렇게 믿는 이들이 복이 있는 건,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모시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말씀 아래서 살아가는 삶을 훈련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과 이 세상의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주님의 뜻을 헤아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길을 온전히 걸어가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을 믿고,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아멘 


(오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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