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 2026. 3. 29. / 삼하 7:1-17; 계 19:11-16; 요 19:17-22

관리자
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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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29일 주일예배 

종려주일, 제주4.3기념주일 

삼하 7:1-17; 계 19:11-16; 요 19:17-22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빌라도에게서 예수님을 넘겨받은 대제사장 세력은 예수님을 골고다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빌라도는 패를 써서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붙였는데, 이는 로마 시대에 죄수를 처형할 때 그의 이름과 죄목을 공지하던 관행이었습니다(Titulus). 그런데 그는 죄명이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문구를 적었습니다.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요 19:19)이라는 말을 히브리어와 라틴어와 헬라어로 쓴 것입니다. 구경을 온 유대인들이 그 패를 보게 됐는데, 대제사장 세력은 그 내용이 탐탁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쓸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자칭’이라는 단어를 추가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는 유대인의 왕이다’(Ἐγὼ βασιλεύς εἰμι τῶν Ἰουδαίων)라고 말했다는 식으로 직접 인용 형태로 고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내가 쓸 것을 썼다” 직역하면 “내가 쓴 것은 쓴 것이다”(ὃ γέγραφα, γέγραφα, 요 19:22)라며, 한번 작성된 문서는 고치지 않는 로마 제국의 행정적 권위주의를 드러냅니다. 압력에 떠밀려 죄 없는 이를 처형하지만, 패를 기록하는 것까지 간섭하는 것은 차단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붙은 패의 내용은 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고 그분의 복음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신앙 고백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메시아적 왕권 전통에 그 근거가 있습니다. 메시아적 왕권이란, 간단히 말해서, ‘왕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도록 왕위에 앉히신 사람입니다(삼하 7:8). 이것이 메시아, 곧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 왕권은 왕 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께 속합니다. 오늘 사무엘하에 나오는 다윗왕은 그 전통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여부스 족속을 물리치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세웠으며,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그 성읍이 신앙적으로 근본적인 의미를 갖게 했습니다(삼하 5:6-9 참조). 여기에는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려는 동기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전쟁과 학살을 자행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다윗의 정복 전쟁을 평가하는 것이 내키지 않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위해 전쟁을 수행하던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가 있었고, 그런 과정을 지나며 더욱 윤리적인 신앙을 모색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다윗왕을 평가합니다. 시편 132편에는 다윗에 의한 예루살렘의 성소화와 메시아적 왕권 전통의 관련성을 이해할 수 있는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왕도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다’는 명제에 담긴 의미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시온을 택하시고, 그 곳을 당신이 계실 곳으로 삼으시기를 원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곳은 영원히 내가 쉴 곳, 이 곳을 내가 원하니, 나는 여기에서 살겠다. 이 성읍에 먹거리를 가득하게 채워 주고, 이 성읍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넉넉하게 주겠다. 제사장들로 의로운 일을 하게 하고, 성도들은 기쁨의 함성을 지르게 하겠다. 여기에서 나는,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한 사람을 뽑아서 큰 왕이 되게 하고, 내가 기름 부어 세운 왕의 통치가 지속되게 하겠다.”(시 132:13-17, 새번역) 


이스라엘의 메시아적 왕권 전통은 권력을 절대화하려는 발상이 아니라, 당신의 백성을 보살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뿌리를 둔 정치 사상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먹거리가 넉넉하고, 사회 지도층의 공의를 통해 사람들의 기쁨이 가득한 성읍을 건설하는 것이 그 목표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바를 가리키는 표지석과 같습니다. 그러나 손에 권력을 쥐고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았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라는 예언자의 선포가 되울려야 했던 까닭이 거기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왕들은 위임받은 왕권을 무신론적인 권력으로 만들기 일쑤였습니다. 이처럼 부침이 심한 이스라엘 신앙의 내력을 돌아볼 때,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십자가 패의 역설적인 의미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다스림과 뜻 안에서 살 길을, 거기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셨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주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묵상하되, 그분의 십자가 위에 쓰인 문장을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고백을 돌려야 할 유일한 분 앞에 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 


(오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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