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일 주일예배
주현절 넷째 주일, 해외선교주일
출 18:13-27; 고전 12:1-11; 막 3:7-19
신령한 것에 대하여
모세와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물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준 자로서 율법을 지키는 길을 백성에게 가르칠 의무감을 느꼈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역사에 당신의 온몸을 바칠 생각뿐이셨습니다. 하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모세는 점점 지쳐갔고,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들에 에워싸여 운신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일이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모세를 도와준 건 그의 장인이었습니다. 백성 중에 능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 재판을 분담하라고 모세에게 조언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을 중재하는 독보적인 존재였기에 그의 권한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때였으나, 모세를 찾아온 백성들이 종일토록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본 모세의 장인은 그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신 방법도 그와 같았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를 세워 당신과 함께 사역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천부장, 백부장 등 아랫사람을 세워 재판을 분담했던 것과 달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일을 맡기실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커다란 사건은 모두 자신에게 가져오게 했습니다(출 18:22). 계급에 따라 업무가 달랐기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처리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까지 가지게 하셨습니다(막 3:15).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을 내쫓은 적이 있는데,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 1:25)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신이 축출되는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직면하여 몹시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권능을 가진 예수님에게 이끌렸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과 매혹의 누미노제적 체험(numinous)을 가능케 하는 자신의 권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도 있었습니다. 당신의 권능을 권력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그 권능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과 똑같이 일할 사람으로 여기셨지, 어떤 위계구조에서 당신의 아랫사람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이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됩니다. 그는 성령의 은사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한 성령의 선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고전 12:7). 그 배경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서로 은사를 비교하면서, 경쟁하고 싸웠다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특별한 수사적 형식으로 이 단락을 시작합니다. “형제들아”라는 호칭과 “신령한 것에 대하여”(Περὶ δὲ τῶν πνευματικῶν)라는 주제문을 사용한 것입니다(고전 12:1). 자신의 사도성을 폄하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사도직의 권위를 강변한 적이 있는 바울이기에, 고린도 교인들과 자신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형제들아”라는 표현을 쓴 의도가 금새 드러납니다.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받았다는 점에서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는 걸 말하려 한 것이겠지요. 모든 이의 유익을 위해 선용하라고 주신 신령한 은사를 독점의 대상으로 여기고, 자기를 내세우는 수단으로 오용하는 이들의 잘못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화법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자신이 받은 은사로 남을 유익하게 하는 형제적 공동체를 세워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성령이 계신 공동체에서는, 이 세상을 비교와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속된 영이 발붙일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그런 “육체의 일”(ἔργα τῆς σαρκός)에 맞서도록 그리스도인들을 일깨우시며(갈 5:16-21),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받은 형제자매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서로 섬기며, 세상의 악함과 육체의 본성을 넉넉히 이겨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오호영 목사)
2026년 2월 1일 주일예배
주현절 넷째 주일, 해외선교주일
출 18:13-27; 고전 12:1-11; 막 3:7-19
신령한 것에 대하여
모세와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물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준 자로서 율법을 지키는 길을 백성에게 가르칠 의무감을 느꼈고,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역사에 당신의 온몸을 바칠 생각뿐이셨습니다. 하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모세는 점점 지쳐갔고, 예수님께서도 많은 사람들에 에워싸여 운신을 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지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일이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모세를 도와준 건 그의 장인이었습니다. 백성 중에 능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 재판을 분담하라고 모세에게 조언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을 중재하는 독보적인 존재였기에 그의 권한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때였으나, 모세를 찾아온 백성들이 종일토록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본 모세의 장인은 그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찾으신 방법도 그와 같았습니다. 열두 명의 제자를 세워 당신과 함께 사역을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세가 천부장, 백부장 등 아랫사람을 세워 재판을 분담했던 것과 달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일을 맡기실 생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커다란 사건은 모두 자신에게 가져오게 했습니다(출 18:22). 계급에 따라 업무가 달랐기에,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처리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신을 내쫓는 권능”까지 가지게 하셨습니다(막 3:15).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을 내쫓은 적이 있는데,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 1:25)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신이 축출되는 광경을 지켜본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직면하여 몹시 두려워하면서도, 그런 권능을 가진 예수님에게 이끌렸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움과 매혹의 누미노제적 체험(numinous)을 가능케 하는 자신의 권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을 수도 있었습니다. 당신의 권능을 권력의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그 권능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과 똑같이 일할 사람으로 여기셨지, 어떤 위계구조에서 당신의 아랫사람으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이 바로 이 주제와 연관됩니다. 그는 성령의 은사가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한 성령의 선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고전 12:7). 그 배경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서로 은사를 비교하면서, 경쟁하고 싸웠다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특별한 수사적 형식으로 이 단락을 시작합니다. “형제들아”라는 호칭과 “신령한 것에 대하여”(Περὶ δὲ τῶν πνευματικῶν)라는 주제문을 사용한 것입니다(고전 12:1). 자신의 사도성을 폄하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기 사도직의 권위를 강변한 적이 있는 바울이기에, 고린도 교인들과 자신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형제들아”라는 표현을 쓴 의도가 금새 드러납니다.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받았다는 점에서 자신과 고린도 교인들 사이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는 걸 말하려 한 것이겠지요. 모든 이의 유익을 위해 선용하라고 주신 신령한 은사를 독점의 대상으로 여기고, 자기를 내세우는 수단으로 오용하는 이들의 잘못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화법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자신이 받은 은사로 남을 유익하게 하는 형제적 공동체를 세워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4-7) 성령이 계신 공동체에서는, 이 세상을 비교와 경쟁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속된 영이 발붙일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그런 “육체의 일”(ἔργα τῆς σαρκός)에 맞서도록 그리스도인들을 일깨우시며(갈 5:16-21),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받은 형제자매들이 언제나 어디서나 서로 섬기며, 세상의 악함과 육체의 본성을 넉넉히 이겨나가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오호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