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뻐하니라 / 2026. 1. 25. / 사 43:18-21, 44:21-23; 행 16:25-34; 마 9:9-17

관리자
2026-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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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25일 주일예배

주현절 셋째 주일

사 43:18-21, 44:21-23; 행 16:25-34; 마 9:9-17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뻐하니라

 

고대인의 세계관에 의하면,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그 나라의 신(神)이 얼마나 강한지에 달려 있었습니다. 천상에서 신들이 싸우면 지상에서는 그 신에게 속한 자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강한 신에게 속한 나라는 전쟁에서 이기고 흥왕하지만 약한 신의 나라는 패배하고 그 백성은 강대국의 신민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더 강한 신을 찾으려는 욕망에 시달렸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인물로 좌옹 윤치호(佐翁 尹致昊) 선생이 있습니다. 그는 나라의 주권을 빼앗긴 약소국가의 일원으로서 당시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미국에 유학하여 자본주의적 약육강식의 세계 질서를 목격한 뒤 1888년 4월 미국 남감리교 최초의 한국인 세례 교인이 됩니다. 역사가들은 윤치호 선생의 기독교 입신 동기를 기독교 산업 문명의 영향에서 찾습니다. 서구 강대국들이 비서구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그 정복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던 까닭이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의 축복에서 비롯됐다고 말하는 제국주의 선교론을 그대로 수용하여, 기독교를 통해 모국을 부강하게 만들려는 사회진화론의 시각에서 윤치호 선생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 현실 속에서 그처럼 기독교 신앙이 왜곡되고 오용될 수 있다는 사실은 뼈아프지만, 성찰할 가치가 있는 일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자신들을 강대국의 먹잇감이 되게 하시는 힘없는 하나님 앞에서 옛 이스라엘 사람들도 신앙의 갈등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백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는 수난을 겪으면서도 자신들의 약한 하나님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11세기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동유럽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았던 아슈케나즈 유대인들(Ashkenazim)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본토인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고, 그 사회에서 가장 천한 직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일궈야 했습니다. 하지만 매일 저녁 삶은 감자로 때워야 하는 궁핍한 생활 가운데서도 식사 후에는 반드시 온가족이 모여 모세오경을 외우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부강하게 해주지도 못하고, 형편이 나아지게 해주지도 못하는 하나님이시지만, 자신들의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살아간 것입니다. 신앙마저 이익의 방편으로 여기게 만드는 작금의 세상 풍조 앞에서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곱씹을 가치가 있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본문에서도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살아가는 순전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역시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와 위정자들의 부패로 생활이 몹시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세관에 있던 마태를 부르셨습니다(마 9:9). 세리들은 지독한 멸시를 당했는데 당시에는 세무(稅務)가 사실상 식민지 수탈 작업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의지하며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는 마태는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집으로 모셔 식사를 대접했고, 자신의 동료들도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바리새인들이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너희 선생은 왜 세리와 죄인들과 밥을 먹느냐?”(마 9:11) 예수님보다는 마태와 그의 동료들에게 더 상처를 주는 말이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 마태와 그의 동료들은 이 말씀에서 형언할 수 없는 온기를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힘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들을 더 강하고 부유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지 같은 의문은 조금도 품지 않았습니다. 자신들 같은 죄인들까지 찾으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에 그저 감격할 뿐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간수도 이들처럼 순전했습니다. 그는 컴컴한 감옥에서 일하여 한 집안을 건사하던 가장이었습니다. 그날 잠이 들었다가 지진의 충격에 깨어 보니 감방의 문이 다 열려 있었습니다. 도망간 죄수들을 상대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 그는 칼로 자결하려 했는데, 어둠 속에서 바울의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우리가 다 여기 있다!”(행 16:28) 간수라는 직업은 매우 위험하고 처우도 좋지 않았지만, 그 일로 가족을 먹여살려온 간수에게는 소중한 일자리였습니다. 그날 그 간수는 바울과 실라로부터 자신의 실존을 파고들어오는 복음을 듣게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자신의 삶을 다 바쳐 지켜온 가족들을 구원해 주실 분의 이름을 듣고서 그는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습니다. 힘도, 돈도, 일신의 영달도 아닌 그저 자신과 가족의 삶을 의탁할 수 있는 분으로 주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을 믿게 된 사실만으로 기뻐했습니다(행 16:34). 남보다 더 강해지거나, 더 부유해지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보살핌의 복음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이 사람들의 이야기가 초라하다고 말할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이들처럼 순전한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보전되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들의 믿음을 힘껏 견인해 주셨고, 교회는 그런 이들의 신앙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더라도, 이 순전한 신앙을 가꾸고, 하나님의 긍휼과 믿음의 기쁨을 세상에 증언하는 우리이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오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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