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 2026. 1. 18. / 슥 14:5-11; 고전 12:12-31; 요 17:20-26

관리자
2026-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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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8일 주일예배

주현절 둘째 주일

슥 14:5-11; 고전 12:12-31; 요 17:20-26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실 새로운 세상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작은 광명체들이 사라져 세상이 어두워질 때 빛이 비춰오듯이 하나님의 다스림이 다스림이 나타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깊은 산골로 숨어들겠지만, 거룩한 사람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솟아난 생명의 물이 동해와 서해로 나뉘어 흐르는 모습은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 땅을 유익하게 하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계절이 바뀌어도 일정하게 흘러가는 그 물처럼 하나님의 다스림은 영원무궁하며, 세상에서 살아가는 생명을 북돋아줄 것입니다. 이 묵시에는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온 세상이 하나가 된다는 뜻도 담겨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날이 오면, 세상을 나누었던 모든 경계선이 사라질 것입니다. 민족이 달라서, 언어가 달라서, 뿌리가 달라서 따로따로 살아온 날은 지나갈 것입니다. 차이를 내세워 나와 남을 분리했던 사람들이 하나님 안에서 서로의 동일성을 깨닫게 될 그날, 인간이 쌓아올린 모든 구별과 차별의 장벽은 허물어질 것입니다. 

 

제국의 군대가 온 땅을 집어삼키고, 민족간 분쟁이 끊이지 않던 주전 8세기 스가랴의 환상은 백일몽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서로 처절하게 싸워왔던 나라들, 지배하고 지배당하며 서로에 대한 두려움만 키워온 민족들의 화해는 간단하게 입에 올릴 수 있는 화제는 아니었습니다. 사실이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런 꿈을 쉽게 꿀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새로운 세상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따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세상이 싸움과 죄악으로 가득한 현실 그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시는 데 있다는 것을 보고 안도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사는 21세기의 세상도 여전히 갈라져 있습니다. 계급간 갈등이 나날이 깊어지고 있고, 더 큰 전쟁이 일어나진 않을까 노심초사 해야 하는 불안정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스가랴 선지자의 묵시는 그 현실성을 조금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묵시가 성취될 시간은 선지자가 살았던 시대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습니다. 

 

최근 미국은 유엔 산하기관을 포함해 66개 국제기구에서 탈퇴하였습니다. 그 기구들이 미국의 이익과 반대되는 의제를 추진하는 세력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국가간 관계는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전제하고, 이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헌법적 질서를 기초로 삼습니다. 이에 반하여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트럼프의 미국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우려스럽습니다. 한편, 교인수가 급감하고 있는 교회도 통합이나 합병 같은 기업의 논리를 수용하라는 강요에 직면해 있습니다. 강요라는 말이 부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교회가 작다는 이유로 합병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교회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타인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사실만으로도 소외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약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직면한 것은 올바른 신학으로 훈련되지 못한 까닭에, 목회와 선교를 위한 소양을 갖추지 못한 목회자와 직분자들이지, 작은 교회 그 자체가 아닙니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는 것도 강대국의 오만과 극단적 정치 이데올로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앙과 이성의 힘으로 훈련된 삶의 양식입니다. 건전한 철학과 신학과 과학과 문학을 통해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인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꾸는 일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본문에는, 요한 공동체 안에 현존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자로 그 공동체에 살아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그리스도는 요한 공동체로 하여금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을 지향케 하는 굳건한 정신이 되어 계셨습니다. 하나가 되게 하는 이유는, 당신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세상에 알리시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참칭하며, 자신을 남보다 높이는, 세상 분열자들의 해악을 사랑으로써 치유하려는 열망이었습니다. 요한 공동체는 주후 90년경, 그리스도인 박해가 절정으로 치닫던 험악한 시기를 지나면서도 그리스도의 뜻을 지켰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보다 두 세대 정도 앞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경계를 초월하는 교회를 온 세상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는 여러 교회를 설립하고 돌보면서, 안정돼 있는 교회들이 위기에 닥친 교회를 위해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물질을 나누는 일이든, 기도를 하는 것이든 위기에 처한 교회를 위해 안정된 교회들이 더 열심히 행동하도록 가르쳤습니다(고후 8-9장 참조). 그것은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삶의 양식이었습니다(고전 12:12-14). 오늘 세상을 어지럽히는 인간의 위기 앞에서, 안으로부터 허물어지고 있는 교회의 위기 앞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교회가 처음부터 걸었던 바로 그 길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채우시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서로 사랑하고 돌봐주는 것, 그러한 삶을 훼방하는 세상의 모든 완력에 맞서 하나됨을 지켜가는 것 말입니다. 

 

(오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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