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소서 들으리이다 / 2024. 10. 20. / 출 20:1-21; 빌 4:8-9; 막 12:28-34

관리자
202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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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0일 주일예배 

창조절 여덟째 주일 

출 20:1-21; 빌 4:8-9; 막 12:28-34

말씀하소서 들으리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멀리 연기에 덮인 산과 거기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와 나팔소리에 이스라엘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출 20:18). 오직 모세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당신을 보러 산에 올라오는 일이 없도록 경계를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만, 이스라엘 자손 중 아무도 그런 생각을 품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에게 돌아온 모세에게 간청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20:19) 직접적인 하나님 경험을 감당할 수 없어 간접적인 방식을 구한 것입니다.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때부터 이스라엘 신앙의 특성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유대인들이 매일 아침과 저녁의 예배에서 읊는 ‘셰마’(שמע ישראל)라는 기도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요구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4-9 참조) 민수기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보다 말씀을 들으라는 요구가 먼저 나와 있기도 합니다(민 15:37-41 참조). 이러한 성서본문들은 셰마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에 두게 하려는 기도라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저명한 개신교 신학자인 페터 침멀링(Peter Zimmerling) 교수가 작년도 독일 목회자 회람에 기고한 “침묵의 집들”(Häuser der Stille)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거기서 침멀링 교수는 오늘날 개신교회가 “세속사회 안에서 생존 투쟁을 벌이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부를 증식시키고 향유하는 데 몰두하는 작금의 사회적 풍토와 극단적인 빈부 양극화가 교회의 생명까지 위축시키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생활의 편의를 중시한다면서 체험적 신앙 훈련을 등한히 하는 것을 그 증빙으로 제시합니다. 훈련이 없다는 것은 교회가 세속적 가치를 정화(淨化)하지 못하고, 그에 동화(同化)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을 수 있습니다. 사실 서양에서 합리주의적 사고와 기계론적 세계관이 풍미한 19세기부터 이미 그리스도 신앙의 공동화(空洞化), 곧 신앙생활의 형식만 남고 알맹이는 없어지는 사태를 염려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공동체 안에 ‘침묵의 집’을 마련했는데, 그들에게 침묵의 집이란 신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려는 영적 노력을 기울이는 공간이었습니다. 그곳을 ‘침묵의 집’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부르는 까닭은 ‘침묵’이라는 경험이 가지고 있는 모종의 깊이와 필요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침묵 속에 있을 때 들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게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침묵의 집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신앙의 근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개신교 공동체 안에 마련된 공간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대화(논쟁)를 마무리하실 때 한 서기관이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반대하여 논쟁하려고 나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장로와 서기관들의 악의적인 질문에 대답하신 것을 침묵 가운데 경청하고,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결론에 이르러 큰 기쁨으로 예수님께 가르침을 구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서기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막 12:34) 이 서기관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침묵과 들음의 관계를 숙고하게 합니다. 묵묵히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는 무위적 행위 속에서 그는 누구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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