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1일 주일예배
대림절 넷째 주일
렘 23:5-8; 요일 4:13-21; 마 1:18-25
다윗의 자손 요셉아
마태복음의 예수님 잉태 이야기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18, 1:25) 이러한 수사학적 특징은 헬라어 본문을 보면 곧바로 눈에 띄는데, 번역 성서에서도 그 점이 잘 살려져 있습니다. 마태는 복음서 독자들이 ‘예수’라는 이름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꿈을 통해 요셉을 찾아온 천사의 분부에도 이름에 관한 내용이 중심을 차지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0-21)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강조는 “임마누엘”이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통해 한 차원 더 심화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이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예레미야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서 일으켜질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일컬어질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렘 23:6). “여호와 우리의 공의”를 히브리어로 읽으면, ‘시드기야’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이 상징하는 의미를 읽어내야 합니다.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있었지만, 그에게서 예언자가 말씀한 덕목을 찾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 왕을 대신해 그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으면서, 개명해 준 이름이 바로 시드기야였습니다. 그는 조상들의 악한 행실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느부갓네살의 눈 밖에 나 바벨론으로 끌려가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도 큰 고초를 겪었고, 예루살렘은 바벨론 총독 그달리야가 다스리게 됩니다.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צִדְקִיָּהוּ, 시드기야) 이 이름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고, 기려지는 이름이지, 명찰처럼 마음대로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는 그처럼 ‘불려지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마리아의 남편 요셉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마리아를 보호하려 하였고(1:19),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예수님이 무사히 태어나게 하였습니다(1:24). 마태는 그를 “의로운 사람”(마 1:19)이라 일컬었고, 주의 사자는 그를 향해 “다윗의 자손 요셉아”(1:20)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을 다윗의 가문과 연결시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행실은 요셉야말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렘 23:5)는 예언은, 요셉을 가리켜 “의롭다”(마 1:19)라고 한 복음서의 말씀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며, 의롭기도 한 사람(צַדִּיק, 짜디크)이기 때문입니다. 요셉(יוֹסֵף)이라는 이름은 “그가 더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요셉이 보여준 의로운 모습은, 그가 바로 “다윗에게서 난 의로운 가지”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복음서의 이야기에서 요셉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주님의 사자들과 소통하며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보호합니다. 천사들은 요셉을 통해 도움을 베풀었고,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세상의 권세가 아기 예수님을 해치려고 끝없이 마수를 뻗어왔지만, 요셉은 그 모든 위험에서 아기 예수님을 보호합니다. 요한일서의 표현대로 하면, 그는 “아기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잉태되었다”는 천사의 기별을 온전히 시인한 사람입니다(요일 4:15, 마 1:24).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게 된 건 당연합니다. 그는 아기 예수님의 잉태로 말미암은 온갖 어려움과 두려움을 극복해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이렇게 불려진 한 사람에게서,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불리시는 진정한 왕이 나셨습니다.
(오호영 목사)
2025년 12월 21일 주일예배
대림절 넷째 주일
렘 23:5-8; 요일 4:13-21; 마 1:18-25
다윗의 자손 요셉아
마태복음의 예수님 잉태 이야기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시작하고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 1:18, 1:25) 이러한 수사학적 특징은 헬라어 본문을 보면 곧바로 눈에 띄는데, 번역 성서에서도 그 점이 잘 살려져 있습니다. 마태는 복음서 독자들이 ‘예수’라는 이름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꿈을 통해 요셉을 찾아온 천사의 분부에도 이름에 관한 내용이 중심을 차지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0-21) 예수님의 이름에 대한 강조는 “임마누엘”이라는 상징적인 이름을 통해 한 차원 더 심화됩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이름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예레미야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서 일으켜질 이스라엘의 메시아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일컬어질 것이라고 하신 말씀입니다(렘 23:6). “여호와 우리의 공의”를 히브리어로 읽으면, ‘시드기야’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이 상징하는 의미를 읽어내야 합니다.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라는 이름을 가진 왕이 있었지만, 그에게서 예언자가 말씀한 덕목을 찾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시드기야는 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여호야긴 왕을 대신해 그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으면서, 개명해 준 이름이 바로 시드기야였습니다. 그는 조상들의 악한 행실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느부갓네살의 눈 밖에 나 바벨론으로 끌려가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당시 예루살렘 사람들도 큰 고초를 겪었고, 예루살렘은 바벨론 총독 그달리야가 다스리게 됩니다.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צִדְקִיָּהוּ, 시드기야) 이 이름은 사람들에 의해 불려지고, 기려지는 이름이지, 명찰처럼 마음대로 붙일 수 있는 이름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는 그처럼 ‘불려지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마리아의 남편 요셉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마리아를 보호하려 하였고(1:19),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여, 예수님이 무사히 태어나게 하였습니다(1:24). 마태는 그를 “의로운 사람”(마 1:19)이라 일컬었고, 주의 사자는 그를 향해 “다윗의 자손 요셉아”(1:20)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을 다윗의 가문과 연결시키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행실은 요셉야말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음을 보여줍니다. 더욱이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렘 23:5)는 예언은, 요셉을 가리켜 “의롭다”(마 1:19)라고 한 복음서의 말씀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는 다윗의 자손이며, 의롭기도 한 사람(צַדִּיק, 짜디크)이기 때문입니다. 요셉(יוֹסֵף)이라는 이름은 “그가 더하신다”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요셉이 보여준 의로운 모습은, 그가 바로 “다윗에게서 난 의로운 가지”라고 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복음서의 이야기에서 요셉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는 주님의 사자들과 소통하며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보호합니다. 천사들은 요셉을 통해 도움을 베풀었고,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 예수님을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핍니다. 세상의 권세가 아기 예수님을 해치려고 끝없이 마수를 뻗어왔지만, 요셉은 그 모든 위험에서 아기 예수님을 보호합니다. 요한일서의 표현대로 하면, 그는 “아기 예수님이 성령을 통해 잉태되었다”는 천사의 기별을 온전히 시인한 사람입니다(요일 4:15, 마 1:24). 그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게 된 건 당연합니다. 그는 아기 예수님의 잉태로 말미암은 온갖 어려움과 두려움을 극복해냈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이렇게 불려진 한 사람에게서,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고 불리시는 진정한 왕이 나셨습니다.
(오호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