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온전함을 이루도록 / 2025. 12. 14. / 사 62:10-12; 히 11:32-12:2; 요 1:19-28

관리자
202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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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4일 주일예배 

대림절 셋째 주일 

사 62:10-12; 히 11:32-12:2; 요 1:19-28

그들이 온전함을 이루도록 


예루살렘 당국자들이 보낸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네가 누구냐?”라는 짧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세례 요한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3)라고 대답했습니다. 성서의 표현을 빌려, 사람들에게 회개를 가르치고, 세례를 베푸는 까닭이 “주의 길을 곧게 하려는 것”임을 밝힌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압박했습니다.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요 1:25)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의 도덕적 영향력에 감화되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따르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순기능을 잃어버린 제도종교에 마냥 머물러 있는 것만으로는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을 따라, 철저한 회개의 삶을 추구하면서, 사람들은 올바른 길 위에 서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정화하면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정말이지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유행하던 묵시문학은 민중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묵시문학적 종말론은 로마제국의 식민통치와 지배계층의 횡포에 시달리던 민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심판을 대망하게 했습니다. 말라기 4장 5절에 따르면, “엘리야”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하나님이 보내신다고 하신 예언자입니다. 여러 묵시문학서에서 엘리야라는 이름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그런 예언과 관련된 인물인지를 알아보려고 한 듯합니다. “네가 그리스도냐? 엘리야냐? 그 선지자냐?”(요 1:20-21) 하지만 세례 요한은 부정했습니다. ‘나는 아니다’(Ἐγὼ οὐκ εἰμὶ)라는 그의 증언은, ‘내가 그다’(Ἐγώ εἰμι)라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에 대해 준비를 하게 합니다. 또한 그들이 유대인들의 범주와 묵시문학적 기대 안에 머무는 한, 그리스도께서 자신들 가운데 계셔도 결코 그분을 알 수 없을 거라는 뜻을 내포합니다(요 1:26). 그들은 전쟁을 이끌 정치지도자로서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투사한 메시아 상(像)을 가진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알아볼 수 없으며, 메시아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속아넘어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세례 요한이 신중하게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에 대해 듣고서도 섣불리 단정하지 않았습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눅 7:21) 민중의 메시아 대망을 이용하여 이익을 취하려 하는 정치 ‧ 종교 지도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예단하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세례 요한의 기다림은 얼마나 큰 귀감이 되는지 모릅니다. 히브리서에 소개된 사람들, 곧 기드온, 삼손, 다윗과 선지자들,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들도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고 기다렸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대로 가감하는 사람은 구원에 다가가지 못합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다고 이내 사라져버리는 믿음은 처음부터 믿음이 아닌 까닭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오기까지 참고 기다리는 삶에 믿음이 있습니다. 이사야서 본문은,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는 함성처럼 들립니다.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사 62:10) 하나님의 백성이 예루살렘에 모일 때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짐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도 당신의 죽음 너머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히 12:2). 이들이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으니 불완전하다고 말해야 할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불완전함 속에서도 꺼지지 않은 그 믿음이야말로 믿음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불완전함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다만, 타협의 희생양이 될 뿐입니다. 


(오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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