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6일 주일예배
창조절 열한째 주일 / 추수감사주일
신 26:4-15; 약 2:14-26; 마 25:31-48
복을 빌기 전에 해야 할 일
신명기 26장의 주요 내용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지어 거둔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의 감사예식문입니다. 이 가운데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고백문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 12∼15절 말씀을 주의 깊게 봅니다. 특히 12절의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라는 말입니다. 초기에는 받은 십일조를 각처의 성소에 저장했습니다. 점차 중앙성소 제도가 확립되면서, 지방 각처 성소에서 섬기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각처에 산재한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할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때 십일조 3년제를 도입합니다. 첫째해, 둘째해 십일조는 중앙성소에 저장해서 주로 성소 운영과 레위인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했고, 셋째해 십일조는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도록 각처의 성소와 각기 자기 집에서도 저장하게 했습니다. 이때 백성들 가운데 정결법 핑계로 십일조를 회피하는 일이 확산된 것입니다. 마침내 성소 당국은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릴 때, ‘주께서 명하신 모든 계명을 핑계대지 않고 충실히 지켰다’는 자기고백을 하도록 합니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14)” 라고.
이렇게 십일조가 진실했음을 고백한 한 후에, 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해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15)”라고 복을 빕니다. 제사장은 무조건 축복하지 않고, 주께서 정한 규례들을 정직하게 지킨 것을 확인한 후에 백성을 위해 복을 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문은 십일조의 목적이 공동체 안의 가난한 이들 즉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돕는 일이었음 알 수 있습니다.
이 십일조의 정신은 예수께서 이어받으시고, 신약시대에도 이어집니다. 야고보 역시 가난한 이들, 그 가운데서도 박해받는 이들을 돕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당시 그리스도 공동체는 로마로부터 박해받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적극 도왔습니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교회, 살아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랬던 교회가 점차 믿음의 생동감이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믿음을 강조하기는 하는데 실제로는 곤경에 처한 이들을 외면하는 관념적인 믿음만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단호하게 설교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 곤경에 처한 지체들 돌봄을 회피하면서 믿음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성전을 짓기 시작한 것은 주후 3세기 후반부터입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성전치장과 조직관리 그리고 성직자들의 방만한 생활에 정신이 팔려 초대 교회가 지녔던 그리스도 공동체는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물질적으로 부유함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임에 분명합니다. 성서는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자이면서 곁에 있는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것은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예수께서도 마지막 날 그가 가난한 자를 어떻게 대했느냐로 심판의 기준을 삼으신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지극히 작은 자를 돕는 것을 당신을 돕는 행위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내 가족의 건강과 미래의 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헛된 사술에 유혹당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을 받고 당신의 복과 구원을 거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복을 빌 때는 오늘 신명기의 말씀처럼 먼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이미 복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멘.
(하태영 목사)
2025년 11월 16일 주일예배
창조절 열한째 주일 / 추수감사주일
신 26:4-15; 약 2:14-26; 마 25:31-48
복을 빌기 전에 해야 할 일
신명기 26장의 주요 내용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 농사지어 거둔 첫 수확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의 감사예식문입니다. 이 가운데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고백문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 12∼15절 말씀을 주의 깊게 봅니다. 특히 12절의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라는 말입니다. 초기에는 받은 십일조를 각처의 성소에 저장했습니다. 점차 중앙성소 제도가 확립되면서, 지방 각처 성소에서 섬기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각처에 산재한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할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때 십일조 3년제를 도입합니다. 첫째해, 둘째해 십일조는 중앙성소에 저장해서 주로 성소 운영과 레위인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했고, 셋째해 십일조는 특별히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도록 각처의 성소와 각기 자기 집에서도 저장하게 했습니다. 이때 백성들 가운데 정결법 핑계로 십일조를 회피하는 일이 확산된 것입니다. 마침내 성소 당국은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릴 때, ‘주께서 명하신 모든 계명을 핑계대지 않고 충실히 지켰다’는 자기고백을 하도록 합니다. “내가 애곡하는 날에 이 성물을 먹지 아니하였고, 부정한 몸으로 이를 떼어두지 아니하였고, 죽은 자를 위하여 이를 쓰지 아니하였고,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14)” 라고.
이렇게 십일조가 진실했음을 고백한 한 후에, 제사장은 백성들을 위해 “원하건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보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15)”라고 복을 빕니다. 제사장은 무조건 축복하지 않고, 주께서 정한 규례들을 정직하게 지킨 것을 확인한 후에 백성을 위해 복을 빈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축복문은 십일조의 목적이 공동체 안의 가난한 이들 즉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돕는 일이었음 알 수 있습니다.
이 십일조의 정신은 예수께서 이어받으시고, 신약시대에도 이어집니다. 야고보 역시 가난한 이들, 그 가운데서도 박해받는 이들을 돕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합니다. 당시 그리스도 공동체는 로마로부터 박해받는 이들을 형제자매로 받아들이고 적극 도왔습니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교회, 살아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랬던 교회가 점차 믿음의 생동감이 희미해지기 시작합니다. 믿음을 강조하기는 하는데 실제로는 곤경에 처한 이들을 외면하는 관념적인 믿음만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고보는 단호하게 설교합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약 2:14). 곤경에 처한 지체들 돌봄을 회피하면서 믿음을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성전을 짓기 시작한 것은 주후 3세기 후반부터입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성전치장과 조직관리 그리고 성직자들의 방만한 생활에 정신이 팔려 초대 교회가 지녔던 그리스도 공동체는 점차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물질적으로 부유함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임에 분명합니다. 성서는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다는 말씀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자이면서 곁에 있는 가난한 자를 외면하는 것은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예수께서도 마지막 날 그가 가난한 자를 어떻게 대했느냐로 심판의 기준을 삼으신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지극히 작은 자를 돕는 것을 당신을 돕는 행위로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내 가족의 건강과 미래의 복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헛된 사술에 유혹당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을 받고 당신의 복과 구원을 거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복을 빌 때는 오늘 신명기의 말씀처럼 먼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으로도 여러분은 이미 복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멘.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