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4일 주일예배
부활절 셋째 주일 / 어린이주일
왕상 3:5-14; 골 3:1-11; 요 4:31-38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솔로몬은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날 밤 꿈을 꿉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왕의 성덕을 떠올립니다. 늘 성실하고 공의로웠던 아버지, 정직하게 하나님을 섬겼던 다윗 왕의 삶과 그에게 복을 주셨던 하나님에 대한 일들입니다. ‘그런 아버지에 비해 나는 얼마나 작은 아이인가.’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되기에는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깊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가져오는 송사를 제대로 재판해줄 수 있을까 하는 직무에 대한 불안감이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 끝에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듣는 마음’이란 히브리어로는 ‘레브 쇼메아’(לֵב שֹׁמֵעַ)인데, 직역하면 ‘듣는 심장’이라는 뜻입니다. 즉 솔로몬은 백성들의 말을 ‘심장으로 들을 수 있기를’ 구한 것입니다.
꿈에서 사람이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 나오는 것이라고 보는 심리학적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한 것은 왕으로서 그가 감당해야 할 직무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날 솔로몬은 기브온 제단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제단에서 천 개의 번제헌물을 한 번에 바치는 화려하고도 장엄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 제사는 당시 건축 중이던 예루살렘 성전 공사가 잘 마무리되고, 백성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기원하는 왕의 제사였는데, 어떤 점에서는 솔로몬의 통치 전략이 반영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일천번제라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압도적은 물량을 동원하여 백성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백성들은 왕의 제사를 지켜보면서 왕의 신앙심을 추앙했겠지만, 동시에 왕이 가진 권력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권력을 백성 앞에서 과시한 날, 솔로몬의 무의식은 그의 작은 존재와 그로 인한 두려움을 의식화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꿈은 하나님의 뜻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계시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의 꿈은, 왕으로서 그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로도 해석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에게 ‘구하라’ 하고 말씀하신 꿈속의 하나님은, 그가 ‘듣는 마음’을 구하자 가만히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솔로몬의 대답이 마음에 드셨던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왕상 3:11) 솔로몬의 꿈을 하나님의 계시로 본다면, 솔로몬의 대답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솔로몬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던 문제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거대한 물량을 동원했습니다. 일천번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백성에 대한 통치력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미처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일천번제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두려움을 해소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을 통해 그의 두려움을 해소하는 길이 전혀 다른 곳에 있다고 알려주고 계십니다. ‘너의 심장으로 백성들의 말을 듣는 것이 네가 가야할 길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솔로몬처럼 손쉬운 방편을 찾곤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로서 명분을 내세우고, 직장에서는 지위를 앞세워 우리 존재의 부족함을 덮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두려움 때문에 서둘러 손에 잡히는 방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론적 두려움은 그런 방식으로는 극복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솔로몬의 ‘듣는 마음’과 같은 본질적인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골 3:1) 우리가 구하고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같은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호영 목사)
2025년 5월 4일 주일예배
부활절 셋째 주일 / 어린이주일
왕상 3:5-14; 골 3:1-11; 요 4:31-38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솔로몬은 기브온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날 밤 꿈을 꿉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왕의 성덕을 떠올립니다. 늘 성실하고 공의로웠던 아버지, 정직하게 하나님을 섬겼던 다윗 왕의 삶과 그에게 복을 주셨던 하나님에 대한 일들입니다. ‘그런 아버지에 비해 나는 얼마나 작은 아이인가.’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되기에는 부족한 존재라는 사실 앞에서 깊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것은 백성들이 가져오는 송사를 제대로 재판해줄 수 있을까 하는 직무에 대한 불안감이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 끝에 솔로몬은 ‘듣는 마음’을 하나님께 구합니다. ‘듣는 마음’이란 히브리어로는 ‘레브 쇼메아’(לֵב שֹׁמֵעַ)인데, 직역하면 ‘듣는 심장’이라는 뜻입니다. 즉 솔로몬은 백성들의 말을 ‘심장으로 들을 수 있기를’ 구한 것입니다.
꿈에서 사람이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에 나오는 것이라고 보는 심리학적 견해가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솔로몬이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구한 것은 왕으로서 그가 감당해야 할 직무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날 솔로몬은 기브온 제단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제단에서 천 개의 번제헌물을 한 번에 바치는 화려하고도 장엄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 제사는 당시 건축 중이던 예루살렘 성전 공사가 잘 마무리되고, 백성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기원하는 왕의 제사였는데, 어떤 점에서는 솔로몬의 통치 전략이 반영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일천번제라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압도적은 물량을 동원하여 백성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강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백성들은 왕의 제사를 지켜보면서 왕의 신앙심을 추앙했겠지만, 동시에 왕이 가진 권력을 피부로 느끼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권력을 백성 앞에서 과시한 날, 솔로몬의 무의식은 그의 작은 존재와 그로 인한 두려움을 의식화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꿈은 하나님의 뜻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계시적 사건이기도 합니다. 솔로몬의 꿈은, 왕으로서 그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로도 해석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에게 ‘구하라’ 하고 말씀하신 꿈속의 하나님은, 그가 ‘듣는 마음’을 구하자 가만히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솔로몬의 대답이 마음에 드셨던 것입니다.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왕상 3:11) 솔로몬의 꿈을 하나님의 계시로 본다면, 솔로몬의 대답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하는 이 부분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솔로몬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던 문제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거대한 물량을 동원했습니다. 일천번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 백성에 대한 통치력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미처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일천번제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두려움을 해소하려고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꿈을 통해 그의 두려움을 해소하는 길이 전혀 다른 곳에 있다고 알려주고 계십니다. ‘너의 심장으로 백성들의 말을 듣는 것이 네가 가야할 길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솔로몬처럼 손쉬운 방편을 찾곤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로서 명분을 내세우고, 직장에서는 지위를 앞세워 우리 존재의 부족함을 덮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두려움 때문에 서둘러 손에 잡히는 방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존재론적 두려움은 그런 방식으로는 극복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솔로몬의 ‘듣는 마음’과 같은 본질적인 해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골 3:1) 우리가 구하고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같은 것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호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