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6일 주일예배
주현절 여섯째 주일
신 4:32-40; 고전 3:18-23; 막 10:13-16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서
스위스의 어느 마을에서는 마을의 경계구역을 확인하는 오랜 풍습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봄바람에 땅이 녹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무렵이면 주민들이 다같이 마을의 경계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세워놓은 마을 경계석이 그대로 있는지, 누군가 그것을 옮겨놓거나, 잡초에 덮여 있진 않은지 함께 살펴봅니다. 마을의 높은 어른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공동체의 의례입니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삶의 터전과 유산에 대해 감사하고, 그것을 지켜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고취하는 시간입니다. 삼대가 함께하는 이 풍습은 오늘 말씀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줍니다. 우리의 삶이란 조상이 물려준 유산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그 유산은 우리의 후손들을 위한 하나님의 기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 1:4). 이 사실을 아는 데에서 지혜가 생겨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새로운 땅에서 누리게 될 자유와 모든 복이 그들의 조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너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과 같으니라.”(신 4:37-38) 모세의 표현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은 기업 곧 유산입니다. 모든 것은 앞선 세대에게서 이어받은 것이지 현재의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다음에 올 후손들까지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조상에게서 이어받은 기업은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4:40). 하나님의 세계에 단독자는 없습니다. 조상들이 있어 우리가 존재하며, 우리 다음에는 후손들이 와서 이 땅 위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경계석’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 힘으로 애굽에서 해방되었고, 강대한 민족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하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일 것입니다. 앞선 세대를 기억하지 않고, 모든 기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자기 존재의 토대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이러한 일이 또 다른 형태로 야기된 것을 보여줍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그 교회의 개척자인 사도 바울을 잊어버린 일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떠난 이후 아볼로가 들어와 지혜로운 말로 가르침을 줌으로써 많은 교인들이 그에게 호감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아볼로에게서 지혜를 얻은 것을 자랑하는 교인들을 보고, 바울에 대한 의리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은 바울에게 속했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이 일어납니다. 전임자와 후임자를 비교함으로써 사달이 난 것인데, 더 근본적으로는 앞선 세대의 헌신을 가볍게 여겨 잊어버린 데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의 토대는 바울이 놓아준 것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고전 3:18). 하나님을 모신 교회 공동체에서 앞선 세대의 역사를 잊어버리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3:22-23)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물리치는 어리석음을 보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존재라는 사실을 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노하셔서, 어린 아이들이 당신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 아이들의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처럼 받들지 않는 자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고도 말씀합니다(막 10:14-15). 어린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너무나 좋아하고,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도 예뻐해서 잘 돌봐줍니다. 모든 사람에게 호의적인 어린 아이들의 순진무구함 속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빛나고 있습니다.
(오호영 목사)
2025년 2월 16일 주일예배
주현절 여섯째 주일
신 4:32-40; 고전 3:18-23; 막 10:13-16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에서
스위스의 어느 마을에서는 마을의 경계구역을 확인하는 오랜 풍습이 있습니다. 부드러운 봄바람에 땅이 녹고,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릴 무렵이면 주민들이 다같이 마을의 경계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세워놓은 마을 경계석이 그대로 있는지, 누군가 그것을 옮겨놓거나, 잡초에 덮여 있진 않은지 함께 살펴봅니다. 마을의 높은 어른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주민 전체가 참여하는 공동체의 의례입니다.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삶의 터전과 유산에 대해 감사하고, 그것을 지켜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고취하는 시간입니다. 삼대가 함께하는 이 풍습은 오늘 말씀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줍니다. 우리의 삶이란 조상이 물려준 유산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그 유산은 우리의 후손들을 위한 하나님의 기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 1:4). 이 사실을 아는 데에서 지혜가 생겨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새로운 땅에서 누리게 될 자유와 모든 복이 그들의 조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사랑하신 고로 그 후손인 너를 택하시고 큰 권능으로 친히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너보다 강대한 여러 민족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너를 그들의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네게 기업으로 주려 하심이 오늘과 같으니라.”(신 4:37-38) 모세의 표현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은 기업 곧 유산입니다. 모든 것은 앞선 세대에게서 이어받은 것이지 현재의 이스라엘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들 다음에 올 후손들까지 언급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조상에게서 이어받은 기업은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4:40). 하나님의 세계에 단독자는 없습니다. 조상들이 있어 우리가 존재하며, 우리 다음에는 후손들이 와서 이 땅 위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경계석’을 지키는 이유입니다. 만약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 힘으로 애굽에서 해방되었고, 강대한 민족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하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일 것입니다. 앞선 세대를 기억하지 않고, 모든 기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자기 존재의 토대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는 이러한 일이 또 다른 형태로 야기된 것을 보여줍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그 교회의 개척자인 사도 바울을 잊어버린 일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떠난 이후 아볼로가 들어와 지혜로운 말로 가르침을 줌으로써 많은 교인들이 그에게 호감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아볼로에게서 지혜를 얻은 것을 자랑하는 교인들을 보고, 바울에 대한 의리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은 바울에게 속했다고 주장하면서 분쟁이 일어납니다. 전임자와 후임자를 비교함으로써 사달이 난 것인데, 더 근본적으로는 앞선 세대의 헌신을 가볍게 여겨 잊어버린 데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의 토대는 바울이 놓아준 것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입니다(고전 3:18). 하나님을 모신 교회 공동체에서 앞선 세대의 역사를 잊어버리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3:22-23)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물리치는 어리석음을 보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이어받을 존재라는 사실을 못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노하셔서, 어린 아이들이 당신께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 아이들의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처럼 받들지 않는 자는 그곳에 들어갈 수 없다고도 말씀합니다(막 10:14-15). 어린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를 너무나 좋아하고,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도 예뻐해서 잘 돌봐줍니다. 모든 사람에게 호의적인 어린 아이들의 순진무구함 속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빛나고 있습니다.
(오호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