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를 바라리라 / 2024. 12. 15. / 애 3:19-33; 히 6:9-20; 눅 1:68-79

관리자
202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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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15일 주일예배 

대림절 셋째 주일 

애 3:19-33; 히 6:9-20; 눅 1:68-79

내가 그를 바라리라 


오늘 구약 본문인 <애가>는 깊은 탄식으로 점철된 책입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애 1:1) 탄식은 계속 이어집니다.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1:2) <애가>를 이루고 있는 다섯 개 장이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3장 19절 이하에서 <애가> 기자는 잠시 절망의 언어를 거두어들입니다. 고난의 기억을 반추하는 자신의 내면에서 소망이 나타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3:20-22) 고난을 기억하는 그에게 불현듯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인식이 주어진 것입니다. 


<애가> 기자는 “내 마음이 그것[고난]을 기억한다”(3:20)고 말하는데, 여기서 ‘기억한다’는 말은 “속으로 깊이 생각을 거듭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생각하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소망을 갖게 됐다는 뜻이 됩니다. “내 고통과 내 불안을 생각함은 쓴흰쑥과 독초와 같은데도 내 영혼은 생각을 거듭하며 안에서 녹아내리네. 하지만 이것을 내 마음에 새겨 나는 희망하네 주님의 자애는 다함이 없고 그분의 자비는 끝이 없어 아침마다 새롭다네.”(3:19-21, 현대어 번역) 고난의 기억을 덮어두지 않고, 그것을 들추어내고 반추하는 가운데 생긴 어떤 ‘틈’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인식이 찾아왔다는 얘기입니다. 선조들이 전해준 신앙의 내용, 곧 하나님의 자비는 영원하고 다함이 없다는 문자적 지식이 살아있는 ‘앎’으로 다가온 순간입니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통해 참된 하나님 인식이라는 선물을 얻은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방법, 곧 신학의 방법에 관하여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오라티오’(oratio), ‘메디타티오’(meditatio), ‘텐타티오’(tentatio), 곧 기도와 묵상과 시련을 신학의 길로 제시한 것입니다. 오라티오(기도)는 인간의 이성의 인도가 아닌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는 자세를 뜻합니다. 메디타티오(묵상)는 기록된 말씀(성서)을 역사와 문화, 철학, 문법 등 인간의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연구하는 학문적 노력입니다. 마지막으로 텐타티오는 ‘시련’을 의미합니다. 모든 종류의 아픔, 불안, 유혹, 괴로움, 절망을 통과함으로써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하도록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시련이라는 일종의 실존적 정화를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앎은 피상적인 지식으로 남거나 부정확한 지식으로 남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자비를 인식하는 데에 이른 <애가> 기자의 경험에 대한 좋은 설명이라고 여겨집니다. 고통스러운 역사를 지워버릴 수도 있고, 덮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애가> 기자는 그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전과는 다른 깊이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의 말씀과 누가복음 사가랴의 찬송에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는 공통된 표현이 등장합니다(히 6:13; 눅 1:73). 하나님께서는 맹세하신 것을 지키시는 분이시므로 오래 참음으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소망을 가지고 앞서 가셨으므로, 교회도 “영혼의 닻”과 같은 그 소망으로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해 나가야 합니다(히 6:20).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장인 사가랴는 오랜 기다림 끝에 하나님의 언약이 백성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주님의 사자가 전한 말씀대로 세상에 태어난 자기 아들 요한에게서 이스라엘을 속량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맹세(약속)에 우리 삶을 비끄러맵시다. 시련이 닥쳐와도 떨어지지 않도록. 


(오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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