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 2024. 12. 8. / 합 2:1-4; 롬 13:8-14; 마 25:1-13

관리자
202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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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8일 주일예배 

대림절 둘째 주일, 성서주일, 인권주일 

합 2:1-4; 롬 13:8-14; 마 25:1-13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이스라엘 전통 혼례에서 피로연은 신랑 집에서 벌입니다. 신부의 들러리들은 신부의 집에서 기다리다가 바깥에서 신랑을 맞이합니다. 그러고 나서 등불을 들고 줄을 지어 신랑과 신부를 잔치 집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들러리들은, 대단한 일은 아니어도 미리미리 준비할 것들이 있습니다. 신랑의 집이 신부의 집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헤아려서 그 여정 내내 등불을 켜 놓을 수 있도록 등과 기름을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에서 다섯 명의 들러리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등불을 대강 살펴보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도착한다는 기별을 듣고 밖으로 나갔을 때 기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됩니다. 기름을 얻을 수도 없어 기름을 사왔을 때는 이미 신랑과 신부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잔치 집에 들어간 후였습니다. 그들은 잔치 집 바깥에 남겨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들러리들을 ‘미련한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5:3). 지난 주일 말씀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의 불의를 그대로 놔둔 채 여호와의 날은 구원의 날이라며 그날을 기다리던 모습이 이 들러리들의 모습과 겹쳐 보입니다(암 5:18 참조). 그들은 자신들이 기다리던 순간을 복되게 보내기 위해 미리미리 바로잡고, 준비해 놓았어야 할 것들이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미련함’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를 가르치시며 “깨어 있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권고는 이 들러리들의 ‘미련함’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해석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 말씀하신 ‘깨어 있음’이란 정신을 각성시켜야 한다거나 경건한 마음을 지키라는 뜻보다는 어떤 ‘준비상태’에 관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신랑과 신부를 잔치 집으로 인도해 주려는 들러리들이 충분한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목적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철저하게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신랑이 오는 순간은 교회가 기다리는 마지막 순간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위한 준비는 바로 지금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만, 신랑이 왔을 때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여기서 말씀하는 깨어 있음은 아닙니다. 신랑이 와서 신부를 잔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갈 때까지 그 길을 밝힐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과 신부를 인도해 주는 일체의 임무를 탈 없이 수행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미리 준비하고, 때가 되었을 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서의 ‘깨어 있음’입니다. 


수도자들은 수도규칙에 따라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도하고, 일하고, 쉬는 시간으로 구성된 일과를 빠짐없이 지키는 것은 매우 힘겨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수도자들은 정해진 일과를 준수하며, 함부로 조정하지 않습니다. 어느 노(老)수도자는 한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수도생활이 몹시 힘들었지만 연륜이 쌓일수록 편안해진다고 말합니다. 일과표를 따를 때 생활과 기도에 리듬이 생기고 그 깊이가 더해진다고 말합니다. 매일 반복하도록 고안된 수도자의 일과표는 일생에 걸친 수도생활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수실(修室)을 위해 기도하는 한 수도자의 기도입니다. “오 예수님, 침묵과 고독의 결핍으로 제가 이곳을 모독하게 허락하지 마시고, 참으로 당신께서 저의 마음에 말씀하시기 위해 저를 이끄신 장소가 되게 해 주소서. 그리고 저의 죽음의 순간에 이곳이 천국의 문이 되게 해 주소서.”(“Une vie en Chartreuse”) 일생의 목적을 향해 하루하루, 흔들림 없이 자신을 준비하는 수도자에게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워졌습니다.”(롬 13:11-12) 우리의 삶에, 우리 민족과 인류의 역사 가운데 오시는 하나님을 평화 가운데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할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오호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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