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 신앙(사7:10-15; 롬1:1-7; 마1:18-25 / 200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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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에 의하면 아기 예수의 탄생 소식을 기술하면서, 이 분에 대한 이름을 세 가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먼저 요셉의 꿈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로 하라"(마1:21)고 합니다. 이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여호수아'를 헬라어 발음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원래는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다주는 신을 뜻하였지만, 신약에서는 '세상을 구원한다'는 의미로 이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마1:23)고 합니다. <임마누엘>은 히브리어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기원은 사7:14에서 이사야가 믿음없는 아하스 왕의 심판을 예고하면서 한 '처녀'(alma) 곧 젊은 여인이 아이를 낳으면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고 했는데, 이 말을 헬라어 '동정녀'(파르테논)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는 이 말을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아기 예수를 '그리스도'(마2:4)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메시아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고대 중동에서 왕위에 오르거나 제사장이 되거나 예언자로 부름 받게 될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신약에서는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에게만 이 칭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마태는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에게 예수.그리스도.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 이름들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대에 걸쳐 기다리고, 바라고, 염원하던 민족적인 혼이 담겨 있습니다. 아기 예수는 자연인이 성장하여 변화를 받고 큰 인물이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 민족의 염원과 세계 인류의 염원을 몸에 지니고 태어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이름들 가운데 특별히 <임마누엘>이 지닌 의미를 생각합니다.
첫째, 임마누엘은 죄의 속박에서 풀려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인류는 죄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죄와 싸워서 이길 수도 없고, 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롬7:24)고 탄식하였습니다. 오직 임마누엘 주님이 함께 하실 때만이 죄로부터 해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임마누엘은 죽음과 대면하는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인간이라도 회복 불가능한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절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죽음이란 강렬한 절망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임마누엘 신앙이 있다면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힘을 얻습니다.
셋째, 임마누엘은 삶의 의미를 상실한 이들에게 희망을 일깨워주는 힘입니다. 시편 시인은 "나를 어여삐 여기시고 산 위에 든든히 세워 주시던 야훼께서 얼굴을 돌리셨을 때에는 두렵기만 하였나이다"(시30:7)라고 탄식하였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얼굴을 외면해 버린 것 같은 상황 보다 더 절망적인 때는 없습니다. 바로 이럴 때 임마누엘 신앙은 참으로 위로와 힘이 됩니다.
이처럼 임마누엘 신앙은 하나님의 심성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게 합니다. 아하스 왕은 시리아와 동맹을 맺어 앗시리아를 대적하겠다는 궁리를 했으나, 결국 외세에 의존함으로써 다윗 왕조의 몰락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그에게 임마누엘 신앙이 없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를 '복음'이라 했습니다. 지금 아기 예수께서 임마누엘로 오십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이는 누구나 임마누엘의 은총을 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