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성 가운데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사45:1-6; 살전1:1-5; 마22:15-22 / 20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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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미국의 폭탄테러 이후에 나타난 새로운 세계 현상이 있습니다. '모호성'입니다. 이는 '세계화 시대'니, '지식.정보화 시대'니, '지구촌 시대'니 하면서 밝은 미래를 그리던 세계가 갑자기 튀어나온 애매 모호한 현상으로 인해 세계가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선과 악의 구분이 분명했습니다. 참과 거짓이 분명했습니다. 국경선이 분명했고, 적과 동지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이 모든 구분이 모호해졌습니다. 적은 있으나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상극의 세계가 '대치'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상극의 세계가 '뒤섞여' 있습니다. 가시적으로 물리적으로 존재했던 선과 악이 추상적인 것으로 증발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추상적으로 변해버린 모호성 앞에서 사람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 두려움과 공포가 세계 최강국이면서, 세계화의 진원지요 선도자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시작되고 있음은 참으로 역설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두려움과 공포는 세계를 행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개시하면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을 향해서 연일 융단폭격을 감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쟁 양상을 보면 테러에 대한 응징이라기보다는 '모호함'에 대한 응징이요, 두려움에 대한 응징 같이 보입니다. '우리의 행동에는 결코 모호함이 있을 수 없다' '우리의 적은 분명하다' '우리는 결코 악에 굴복하지 않는다' '우리는 변함없이 세계 최강임을 보여주겠다.' 이런 식의 자기 확신이 강하게 풍겨납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의 자만입니다. 이 같은 자만심으로는 세계를 휩쓸고 있는 모호성과 두려움을 잠재울 수 없다고 봅니다. 전쟁의 승전보에 귀를 기울여야 할 미국 시민들이 연일 발행하는 생화학 테러 공포로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전쟁은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공포는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모호성의 세계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오늘 우리가 읽은 세 말씀은 이에 대한 대답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나 여호와는 나의 기름을 받은 고레스의 오른 손을 잡고 열국으로 그 앞에 복종하게 하며 열왕의 허리를 풀며 성문을 그 앞에 닫지 못하게 하리라"(사45:1)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 고레스를 통해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어찌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손을 빌어 당신의 백성을 해방시키시는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바빌론이나 파사나 약자를 핍박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모호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는 바울이 노심초사한 대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데살로니가는 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화를 이룩하기 위해 군사력을 동원해서 개발한 도시입니다. 바울은 이 도시를 거점으로 복음의 세계화를 향한 교두보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이 또한 인간 편에서 보면 모호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 편에서 보면 모호한 상황 가운데서 당신의 목적을 달성하시고, 선을 이루십니다. 오늘날도 세계가 갑자기 '모호성의 덫'에 걸려 두려움에 떨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구원 목적을 이루시리라 믿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리하시도록 겸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