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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9세기 북왕국 이스라엘 7대왕 아합(BC.876-850)이 통치하던 시대입니다. 오랜 전쟁으로 백성들은 지치고 나라 재정은 고갈되었습니다. 남자들은 전쟁에 동원되어 가족을 돌볼 수 없었습니다. 아합은 피폐해진 국가를 부강하게 할 요량으로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입니다. 야훼 하나님을 섬겨야 할 이스라엘이 국가 번영 전략으로 바알을 국가 신으로 섬기는 시돈과 정치적인 결속을 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아합은 이세벨과 함께 이스라엘 각처에 있는 야훼 신전을 헐어내고 바알 신전을 세우기 시작합니다. 야훼 하나님을 섬기는 예언자들의 수난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 엘리야가 등장합니다. 엘리야(Elijah)라는 이름 ‘야’(Yah)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야훼 신앙이 수난 받는 시대에 하나님의 이름을 표방하다니, 죽기로 작정하고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아직 하나님 보시기에 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손이 닿지 않는 빈들에 피신해서 까마귀들이 물어다 주는 고기를 먹고, 시냇물을 마시며 지내도록 합니다. 가뭄이 계속되자 이번에는 바알의 본고장인 페니키아에 있는 사르밧으로 옮기도록 합니다. 그러나 막상 사르밧에서 엘리야가 만난 이는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그런 과부의 집에 머물던 엘리야에게 뜻밖의 난감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과부의 외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는 불행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과부는 참으로 후덕한 사람이었습니다. 제 식구도 아닌 객을 맞아들여 거처와 끼니를 해결해준다는 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여인이었음에도, 외아들이 죽게 되는 불행이 닥치자 엘리야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나선 사람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다니! 엘리야는 놀랍게도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그의 열정은 뜨거웠으나 현실이해는 나이브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죽은 아이를 마치 제 자식이나 되는 것처럼 자신의 가슴에 안고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립니다. 성서는 이 장면을 이 장면을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왕상 17:22)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사렙다 과부는 야훼 하나님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중대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는 분만이 아니라, 생명을 되돌려 주시는 분, 심판과 죽음을 관장하시는 분만이 아니라, 은혜와 생명을 베푸시는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신 인식의 변화입니다.
이 과부의 이야기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바빌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은 반드시 죄악을 응징하는 분으로만 여기고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응징하는 분이지만, 죄를 회개하면 다시 생명을 주시는 분이었던 것입니다. 죽은 자로만 여긴 바빌론 포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날 길이 있음을 깨닫게 한 이야기이기도 한 것입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야고보는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허망함을 말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금년에는 이렇게 했으니, 내년에는 저렇게 해야지 하고 계획을 세우는데, 사람의 일이 자기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계획’은 ‘시간’을 관리하는 것으로, 그것은 마치 모래를 손에 꼭 쥐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이 시간을 관리한다는 발상 자체가 허망한 일입니다. 시간은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시간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허리를 묶고’ ‘등불을 켜들고’ ‘서 있어라’(눅 12:35)고 하십니다. 이 세 마디 말씀은 주인을 섬기는 시종들에게 요구되는 말씀입니다. 주인은 신실한 시종에게 더 큰 일을 맡기듯이, 주님께서도 그리하십니다. 신실한 종이라야 하나님께는 당신의 일을 맡기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