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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가운데 15장 전체를 할애해서 부활에 대해 길게 서술한 것을 보면, 당시 사람들이 부활을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후대의 기록인 복음서 역시 예수의 부활을 명백하게 역사적인 사실로 말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부활을 말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직접 목격자로서 가 아닌 “내가 (전해)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라고 증언자 입장에서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라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부활에 대한 교회의 공식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죽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살아나셨다’고 말하는 걸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메시아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그들이 기다린 메시아는 다윗처럼 천하를 호령하는 인물이기도 하고, 스가랴가 기대한 것처럼 어린 나귀를 타신 분이기도 하고, 이사야가 기대한 것처럼 백성들의 죄를 대신 지신 유월절 어린양과 같은 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전에 존재했음에도 백성들의 기억에서 더 이상 살아 있다고 볼 수 없는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식으로 말한 것입니다. 바울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로 살고, 그리스도로 죽으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분이 그리스도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비로소 그리스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어찌 죽을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아니면 그렇게 죽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죽으심으로 부활하신 분입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산다는 게 무엇인지,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갖가지 은유를 동원하여 집요할 정도로 부활의 삶이 무엇인지를 말합니다.
바울에 의하면(고전 15:42-44) 우리의 삶에는 썩는 삶이 있고 썩지 않는 삶이 있습니다. 욕된 삶이 있고 영광스러운 삶이 있습니다. 약한 삶이 있고 강한 삶이 있습니다. 육의 삶이 있고 영의 삶이 있습니다. 육의 몸이 있고, 신령한 몸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부활의 삶을 사는 것인가?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신 삶이 바로 부활의 삶입니다. 그분이 지신 십자가는 죽음 너머의 부활을 예시합니다.
바울서신보다 뒤에 기록한 복음서가 빈 무덤을 증언하는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죽은 자를 기념하는 교회로 하여금 산 자를 위한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빈 무덤 안의 청년의 말입니다.“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거기서 뵈오리라”(막 16:7). 예수의 갈릴리에서의 삶은 십자가 죽음을 불러들였고, 그가 죽으심으로 사람들은 비로소 그분의 삶이 그리스도의 삶임을 깨달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것은 그 완고하고 뻔뻔한 죄악의 도성 예루살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를 죽인 곳입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은 그리스도를 죽이는 곳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곳이 아닙니다.
욥은 죽어서 살가죽이 다 벗겨진 후에라도, 고달픈 인생이 위로 받고, 억울한 누명이 풀리기를 절규했습니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세월호 참사를 당한 유가족들이 조롱당하는 모습에서도 욥의 고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욥은 명시적으로 부활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부활은 반듯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던 게 분명합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지 못했다면, 지금도 욥처럼 절규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부활의 삶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고 사는 삶입니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고, 고통에 공감하고, 나보다 연약한 자들을 돕고 사랑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그렇게 죽음으로써 부활은 내 삶에서 실체가 됩니다.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