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근심(사 58:6-11; 고후 7:10-13; 마 6:16-18 / 19.3.10)

관리자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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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오랜 옛날부터 구원의 방편으로 구제, 기도, 금식을 실천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이 세 가지는 종교의례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했습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마 6:4,6,18): 구제이든, 기도이든, 금식이든 사람에게 보이려고, 보상을 기대고 하지 말라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조국으로 돌아왔을 때입니다. 꿈에도 그리던 조국에 돌아온 이들에게 현실은 너무나 암울했습니다. 정치적인 불안과 피폐한 살림, 종교적 회의심과 도덕적 타락까지 겹쳐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힘에 겨웠습니다. 도처에 불의가 만연했습니다. 온갖 악행이 범람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거죽만 남은 종교 의례는 그 어느 때보다 성행했습니다. 밥술이나 먹는 사람들 그리고 나라의 지도자들은 금식의 규례를 지키는데 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들에게 정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언자의 눈에 저들의 금식은 위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암울한 세상에서 희망의 빛을 구하기 위해 금식하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금식 규례는 열심히 지키면서 동족을 노예로 삼고, 약자를 괴롭히고, 거리에 버려진 이들을 외면한다면 그런 금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바빌론이 예루살렘을 3년 동안 포위하고 있던 때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요량으로 자기 동족인 노예를 풀어주었던 자들이, 바빌론이 물러가자 풀어줬던 노예들을 다시 붙잡아 노예로 삼기도 했습니다(렘 34:8-22). 다급할 때는 정의를 행하는 척 하다가 형편이 나아지자 옛 악행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받는 사람들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고 질타한 것입니다.

한때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이라는 우리 시대의 멘토들이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일이 있습니다. 저들의 해학 넘치는 입담과 지혜로운 조언은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마치 복음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힘든 삶을 강제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고통의 원인이 젊은이들 개인의 문제인 것처럼 여긴다면 문제의 본질을 가린 마취제와 다를 바 없습니다. 최고급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으로서, 우리시대 청년들의 고통이 어디로부터 연유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고, 시대의 모순을 단지 청년기의 성장통 정도로 치환시키는 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우리 시대 청년들을 걱정한다면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을 바꾸자’고 하는 게 그나마 양식 있는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사야의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는 표현은, 치료중인 상처에서 새살이 돋아 오르는 것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금식의 규례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억울한 이들이 없게 하고, 압제를 풀어주고, 주리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이 공동체가 입은 상처를 신속하게 치료하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차원을 달리해서, 금식 자체보다 금식에 이르게 하는 ‘근심’에 대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다”(고후 7:10): 그리스도인은 신앙의 정진을 위해서, 교회가 바르게 되기 위해서, 아직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가족들을 위해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걱정과 근심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근심은 유익을 가져다주지 않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근심은 영혼을 맑게 하고, 정신을 건강하게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근심 곧 거룩한 근심은 공동체의 상처를 치유한다는 게 바울의 지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근심은 되도록 멀리해야 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거룩한 근심은 가까이 해야 합니다.(하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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