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운 세상(왕상 3:4-15; 골 3:1-11; 요 4:27-38 / 20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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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6). 만일 신앙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런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특별히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사람에게 요구되는 삶 곧 윤리가 있습니다. 신앙과 윤리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그런데 신앙을 강조하면서 윤리를 소흘히 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윤리는 강조하면서 신앙은 소흘히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들의 삶은 이중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에는 신앙도 윤리도 아닌 오직 정서적인 안정만을 찾는 자기충족적인 신앙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자기 충족을 위해서는 항상 드라마틱한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이벤트가 필요합니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상업주의에 오염된 종교행위가 있습니다. 연전에 이해인 수녀는, 영성생활은 꾸준히 평범해야 하는데 드라마틱한 것을 추구하다보면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캄캄하고 암흑 같은 인생이 정답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연유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은 “새사람을 입은” 자로서,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닮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골 3:10)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지식”은 내가 누구인가 하는 자기지식입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고서 구한 ‘지혜’ 곧 ‘경청하는 마음’은 자기지식에 투철한 사람이라야 구할 수 있는 지혜입니다.
요한이 전하는 수가성 우물가의 이야기. 제자들은 마을로 먹을 것을 구하러 들어갔고, 예수께서는 마침 우물에 물 길러 나온 여인과 대화를 나눕니다. 잠시 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가고, 먹을 것을 구한 제자들이 돌아옵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제자들 사이에 새로운 대화가 이어집니다. 조금 전 우물가의 여인과 마실 물을 중심으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물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지금은 제자들과 먹을 것을 중심으로 생명의 양식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이 장면에서 우물가의 여인은 이미 예수를 통해 진리를 깨달은 반면, 제자들은 아직도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제자들은 우물가의 여인보다 확실히 아둔한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제자들에게 추수에 대한 말씀을 하시는 데 도무지 그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38) 이 말이 끝남과 동시에 놀라운 장면이 벌어집니다. 여인에게서 예수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자기 동네에서 머무시기를 청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이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을 경멸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전하는 말에 동네사람들이 반응한걸 보면 대단한 신망을 지닌 여인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여인,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여인이 전한 복음의 소식이 이처럼 놀라운 결실을 맺다니. 이 장면은 다시 앞의 38절과 오버랩 됩니다. 뿌리기는 다른 사람이 했고, 제자들은 단지 결실을 거두는 데 참여한 자들이 된 것입니다. 수고한 바가 없는데도 결실을 거둬들이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함이다”(요 4:36b). 이는 예수님의 경제학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다른 데서 온갖 부조리와 불신과 빈부격차가 만연합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복음 활동에 대해 하신 말씀이지만, 오늘날 자본주의는 노동보다 자본이 대접받는 제도입니다. 노동은 항시 뒷전으로 밀립니다. 그러니 노동을 존중하지도 않고, 노동자가 존중받지도 못합니다. 고단하게 산 여인이 뿌린 복음의 결실을 수고하지 않은 제자들이 거둔다는 것, 생각해 보면 공평하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세상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가꾸려는 세상입니다.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