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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과 복음은 공존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취합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바울의 이런 논리에 의하면 율법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율법에 묶어두려는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율법을 재해석한다고 보는 게 맞는 말일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변증하기 위해 ‘율법의 시대’와 ‘복음의 시대’라는 해석의 틀을 구사합니다. 율법에 대한 전적인 부정이 아니라, 율법의 불가피성과 함께 율법의 본래 목적이 무엇인가를 말하려 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 의하면,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은혜의 선물 중에서도 가장 큰 선물입니다. 바울은 여기서도 ‘자유’에 대한 변증으로 유대교의 ‘할례’를 문제 삼습니다. 바울에게 할례를 수용한다는 것은 율법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유대인에게 할례는 ‘율법의 아들’이 되는 의식입니다. 그리하여 갈라디아교회에 침투한 율법주의자들은 예수 안에 있으면서도 할례는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는 것이지 믿음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는 논리를 폈습니다. 바울은 이를 간과하지 않았습니다. 할례의 수용은 결과적으로 자유케 하시는 은총을 버리고 종의 멍에를 메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요구는 끈질겼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어느 손 마른 자를 세워 놓고, 안식일에 병을 고쳐도 되느냐며 예수를 시험합니다. 물론 출애굽기 안식일 규정은 안식일에는 어떤 형태의 노동도금지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가 병을 고쳐도 된다고 말하면 안식일을 범했다는 죄목으로 고발할 참이고,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 그러면 왜 안식일에 병을 고친 것이냐며 추궁할 참입니다. 이때 예수께서는 안식일을 율법이 아닌 ‘선하신 하나님’과 관련시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선하신 하나님이라면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본래 안식일 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가를 판단의 기초로 삼으신 것입니다.
세상은 지금도 변함없이 율법주의가 횡행합니다. 인간을 억압하고, 지배하고, 노예로 삼으려합니다. 인간의 태만과 무책임과 파렴치함을 접할 때마다 오늘날도 율법주의의 유혹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율법적인 강압과 복음적인 자유가 공존할 수 있는 것처럼 타협하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일 율법과 복음이 공존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 준다면, 그것은 “누룩처럼 퍼져서”(갈 5:9) 마침내 인간 사회는 “피차 물어뜯어 멸망할 수밖에 없는”(갈 5:15) 노예 세상으로 돌아간다는 게 바울의 생각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유를 위하여 부름 받은”(갈 5:13) 사람들입니다. 자유를 지키고, 자유를 증거하고, 자유를 실천하기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자유를 향유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자유가 침해당하는 세계와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국가로부터 자유가 침해를 받는다면 마땅히 저항해야 합니다. 복음의 선물인 자유는 ‘개인의 권리’로만 귀속되지 않습니다. 복음의 자유는 하나님께서 인류 복지를 위해 주신 선물입니다. 때문에 복음의 선물인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도록 용인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자유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기 위해서”(갈 5:15) 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강압으로 종노릇하게 하지만, 복음은 사랑으로 종노릇하게 합니다. 이런 복음의 자유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성령으로부터 나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성령을 좆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라야 자유를 빙자한 방종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인간을 노예로 만들려는 갖가지 강압들을 물리치면서 사랑으로 종노릇할 수 있습니다.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