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슥 4:4-9; 고전 12:4-11; 눅 17:5-10 / 19.7.14)

관리자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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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 포로생활 끝에 1차로 귀환했을 때입니다. 유다의 총독이 되어 귀환한 스릅바벨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스룹바벨은 뜻밖의 큰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의 정적들의 방해가 극심했기 때문입니다. 스룹바벨은 안팎의 도전을 받자 “누가 감히 이 거룩한 하나님의 사업을 가로막을 수 있느냐!”며 더욱 강력한 의지로 성전 재건을 밀어붙이게 됩니다. 이런 강요된 질서 가운데서 스가랴의 환상을 통한 메시지가 이어집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영)으로 되느니라”(슥 4:6) 강압적인 성전 재건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보수하면 국가 안보(국가 융성)가 저절로 이뤄질 것으로 믿는 잘못된 신념을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성벽을 견고하게 쌓아도 인간이 쌓은 것은 결국은 또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스릅바벨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일하지 말고, 미래에 나타날 메시야에게 봉사하라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민주국가에서 권력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국민 또는 시민을 섬기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세상 권력은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달리 지배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권력자들이 더욱 낮아지고 작아져서 봉사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믿음을 이해할 때도 그런 차원에서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라고 제자들이 요청했을 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뽕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기어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다.”(눅 17:5-6) 예수께서는 왜 ‘모래 한 알 크기만큼의 믿음’이라고 하지 않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고 했는지 생각이 미칩니다. 사람들은 으레 ‘겨자씨’ 하면 작다는 것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겨자씨 이야기는 단지 작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생명을 품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한 우주가 그 안에 들어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아무리 커도 생명이 없다면 쇄락의 길만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큰 것을 위해 사신 분이 아닙니다. 생명을 품고 사신 분입니다. 예수께서 일으키신 기적들 모두가 생명의 기적입니다. 지금도 예수께서는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당신의 육신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당신이 뿌린 생명의 씨앗은 지금도 발아해서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헤롯대왕은 솔로몬이 지은 성전보다 두 배나 더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지을 정도로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런 헤롯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큰일을 한 것은 맞지만 생명을 죽이는 일만을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헤롯에 비하면 겨자씨 한 알에 불과합니다.

사도 바울의 은사론도 그래서 나왔습니다(고전 12:8-10). 이 말씀은 ‘은사의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모든 인간의 ‘사회적 평등’을 선언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울의 은사론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표현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따라” “같은 성령으로” “한 성령으로”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은 일은 무엇이든 자기 업적이 되고, 자랑이 되고, 불만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말미암은 일은 공동체의 유익을 가져옵니다. 기적을 일으킵니다. 많은 이들이 겨자씨처럼 작지만 생명을 품은 믿음이 아닌 깜짝 놀라게 할 큰 기적을 일으킬 믿음을 구합니다. 그래서 큰일들을 많이 하가는 하는데 썩은 냄새만 납니다. 예수께서 겨자씨 이야기에 뒤이어 주인과 종의 예를 든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나를 들어 쓰시기에 불편하지 않고, 이웃이 나를 쓰기에 불편하지 않게 작아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내가 작아질수록 기쁨은 커지고 믿음도 자랍니다.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이지만 생명을 품은 믿음이라야 기쁨이 있습니다. 큰 믿음 구하지 맙시다. 생명을 품은 믿음을 구합시다.(하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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