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소리-빛(사 60:1-3; 갈 4:1-7; 마 2:1-12 / 성탄일 설교 / 1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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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스며드는 성질이 있고, 소리는 진동하는 성질이 있습니다. 빛은 화학변화와 함께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성질이 있고, 소리 역시 화학변화와 함께 물리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성경은 메시아 사건 즉 복음을 말할 때 빛으로 은유하기도 하고, 소리로 은유하기도 합니다. 복음은 인간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변화시키기도 한다는 뜻이겠지요. 여기에 ‘하늘로부터’ 라는 은유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적 사건’을 뜻하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외칩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이사야의 ‘시온사상’(사 2:3, 41:27, 60:1-22)을 가장 잘 표현한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메시아 왕국으로 세상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사상이 시온사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시온사상은 실제 역사에서 여지없이 어그러졌습니다. 예루살렘은 바빌론에 유린되었고, 70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돌아왔습니다. 막상 와서 보니 현실은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정치는 부패하였고, 백성들의 삶은 궁핍했으며, 사회 기강은 혼탁했습니다. 여기에 우상숭배와 미신 행위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예루살렘은 그야말로 가난과 압제와 슬픔만이 가득한 ‘한 밤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낯빛이 밝을 까닭이 없습니다. 얼굴마다 죽을병에 걸린 환자처럼 슬픈 기색입니다. 세상에 빛을 비추기는커녕 자기 안의 빛마저 꺼져버린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향해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세계를 향해 열린 사고를 지니라는 것입니다.
마태가 전한 메시아의 탄생 소식 역시 ‘한 밤중’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마태는 아기 예수께서 ‘헤롯 왕 때’에 성령으로 잉태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헤롯 왕 때’란 문자 그대로 백성들에게는 고통과 시련이 극에 달한 때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는 절망의 때입니다. 이럴 때 예수께서 동정녀에게서 ‘성령의 잉태’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방법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처녀 잉태’가 어떻게 가능한 일인지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논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 잉태’가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이사야와 마태는 인간의 절망 가운데서 하늘로부터 오는 희망을 말했다면, 바울은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합니다. 복음의 빛을 받아 사는 사람들은 초등학문 수준의 율법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라고 합니다. 물론 율법 자체가 초등학문 수준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요지는 율법 자체가 아닌 율법이 규정하는 인간입니다. 율법은 인간을 타율적인 존재로 규정합니다. 어린아이로 봅니다. “어렸을 동안” “종과 다름없어서” “후견인”이라고 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복음은 인간을 자율적인 존재로 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존재로 말합니다.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을 “상속자”로 말합니다. 이처럼 율법과 복음은 인간을 보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율법은 감시하고, 규정하나, 복음은 믿고 기대합니다. 율법은 인간을 타율적인 존재로 취급하지만, 복음은 인간을 ‘자유인’으로 존중합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떨 수 없는 절망과 죽음의 때에 희망의 문을 열어준 사건입니다. 하루하루가 고달픈 나머지 어른이기를 포기하고, 세상에 종노릇하고 있을 때, 아들의 영을 부어준 사건입니다. 복음의 빛은 아무리 어둔 밤일지라도 희망의 얼굴로 빛나게 합니다. 복음은 가난하면서도 희망으로 살게 합니다. 눈앞의 난관을 모면하기 위해서 세상에 종노릇하지 않게 합니다. 고단한 가운데서도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살게 합니다. 아멘.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