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을 주러 오시는 분(렘 23:5-8; 요일 4:15-21; 마 1:18-25 / 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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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장차 오실 메시아는 애굽 땅 노예생활에서 만난 하나님이 아닌,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렘 23:7-8) 즉 자유민으로 자기 땅에서 만나게 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 설레고 천금 같은 무게로 주신 말씀인지 모릅니다. 노예 습성을 지닌 사람들은 사랑과 정의로 통치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율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율법으로 통치해야 합니다. 억압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왕들은 대부분이 자기 백성을 강압으로 통치했습니다. 그러다 나라는 도탄에 빠지고, 백성들은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방황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같은 쓰라린 경험을 잘 알고 있기에 장차 오실 메시아를 자기 땅에서 사는 자유민의 삶과 관련시킨 것입니다. 때문에 이제 오시는 메시아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는 참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다가 또 시선이 멈춘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일서 4장 18절 말씀입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쫒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함께해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불가피 곁에 두어야 할 이들이 있습니다. 함께 있음으로 자랑스러운 이가 있는가 하면, 함께 있음으로 부끄러운 이가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이는 더욱 가까이 하고 싶고, 부끄러운 이는 멀리 떼어놓고 싶습니다. 같은 핏줄인데도 자랑스러운 자식도 있고, 부끄러운 자식도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 박해받는 이들, 죄인들 즉 그들과 함께 나 또한 어떤 피해를 입게 될지도 모르는 이들과 함께하는 데는 분명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도 요한은 그것을 사랑의 힘이라고 말합니다. 사랑의 힘이 아니고는 나보다 못한 이들과 함께 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의 힘이 아니고는 내 앞길에 장애가 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사랑이 아니고는 박해받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요한 사도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말합니다.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쫒는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박해 받는 이들과 함께 하려면 두려움이 따릅니다. 역시 내 미래의 삶을 망가뜨릴 이와 함께 하려면 두려움이 따릅니다. 바로 그럴 때 진정한 사랑은 그 모든 두려움을 밀어냅니다.
예수께서 보여 주신 삶이 그러합니다. 그분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신 것은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땅 비천한 이들과 함께 하신 것은 비천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분 스스로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만인이 흠모할 신분으로 태어나도 세상을 통치하기 어려운 터에, 가난한 신분으로 오셔서 멸시 천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분이니, 이것이야말로 지극한 사랑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 사랑의 본질을 깨달았기에,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여 스스로 지혜 있는 채 하지 말라”(롬 12:16) 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분명 그가 예루살렘의 권세 있는 자들과 대척점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의 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힘이 필요합니다. 본능의 힘, 돈의 힘, 권력의 힘, 집념의 힘, 아름다움의 힘, 지식의 힘, 심지어 미움, 질투, 증오, 원한까지도 힘으로 작용합니다. 뜻밖에도 원한과 증오의 힘은 막강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힘들은 자기 생명을 소진시키고 불행을 가져옵니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힘은 사랑의 힘뿐입니다. 대림절은 바로 아기 예수께서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사랑의 힘을 우리에게 주러 오시는 절기입니다. 아멘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