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기다리는 믿음(슥 2:1-13; 롬 11:25-32; 눅 19:28-40 / 19.12.15)
한국기독교장로회 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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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꿈에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내 안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측면이 있고, 나 밖에서 다가오는 꿈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인간은 이 두 가지 측면이 균형 잡혀 있어야 합니다. 내 꿈만 있고, 나 밖에서 다가오는 꿈이 없다면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시계가 멈추어 서듯이 인생 그 자체가 멈춰버릴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자살의 이유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조급하고, 참지 못하고, 고생을 멀리하고, 눈앞의 성공에만 매달리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지금 ‘이익’을 얻는 것보다 ‘믿음’(신용)을 얻는 게 얼마나 더 소중한 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내가 이루고자 하는 꿈은 없고, 나 밖에서 오는 꿈만을 바라본다면 그는 비현실 속에서 사는 사람, 망상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스가랴가 본 환상. 한 젊은이가 측량줄을 들고 예루살렘을 측량하기 위해서 가고 있습니다. 그 뒤를 천사가 따르면서 부질없는 일이라고 계속 되 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활한 터를 새로운 삶의 터로 삶으시려는데, 젊은이는 이전에 있었던 안온한 터만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기 안의 희망이라는 게 늘 그렇습니다. 그리하여 뒤따르는 천사는 자신의 작은 소견만을 생각하지 말고, 보다 원대한 꿈 즉 하나님의 가능성을 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모습은 여러 가지 상징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까지 아무도 타보지 않은 새끼 나귀를 타셨습니다. 사람들의 목적대로 훈련되지 않은 나귀입니다. 지금 당장 나귀를 이용하려는 사람은 그렇게 훈련되지 않은 어린 나귀는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귀는 오랜 옛날부터 군마와 달리 평화를 상징하는 짐승입니다. 그리하여 이 상징은, 메시아는 인간의 역사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메시아를 환영하는 무리들도 그렇습니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땅의 백성들뿐입니다. 때문에 이 장면은 진정으로 메시아를 기다리며 환영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보여줍니다. 동시에 기득권자들로부터 배척된 메시아가 어떤 고초를 겪을 것인가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때 땅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환호합니다. 그러나 일단의 무리는 날카로운 눈으로 예수를 쏘아보며 조롱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향해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고 하십니다. 메시아의 희망은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굳건한 의지와 염원을 담아 바랄 때 옵니다. 그리하여 이 장면에서 예수께서는 마치 백성들과 함께 메시아의 도래를 외치는 시위 주동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배척과 수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메시아 곧 세상의 권력자들 왕들을 배척하고, 사람들에 의해 배척된 예수를 메시아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인간의 탄생은 반드시 낡은 인간의 죽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부활은 죽음 가운데서만 실재합니다. 하나님의 가능성은 인간의 가능성을 무로 돌리실 때 나타납니다. 내가 이루겠다고 위세를 부리는 한 하나님은 개입하지 않습니다.
대림절은 막연히 내 꿈이 이뤄지기를 기다리는 절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일 눈앞의 꿈에만 열중한 나머지 하나님께로 오는 꿈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것은 마치 굽어진 화살을 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자신의 가능성에만 매달리는 희망은 자기 파멸을 불러들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현실이 절박해도 평화의 왕으로 오시는 주님의 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무지렁이들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겉옷을 벗어 새끼 나귀 등을 덮고 길에 깔아 메시아를 영접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오시는 메시아를 영접하기 바랍니다. 아멘.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