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신 30:15-20; 갈 5:16-26; 막 4:1-9 / 1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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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역사가가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이 있습니다. 특별히 나라의 파국과 같은 불행한 역사를 해석할 때 그 원인을 밖에서 찾지 않고 안에서 찾습니다. 과거 지향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미래 지향적으로 해석합니다. 자기 성찰을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합니다. 피해자이면서도 피해의식에 머물지 않고, 역사의 주체로서 해석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자기 부정의 아픔을 받아들여야 하고, 내부로부터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신명기 역사가는 이스라엘이 참담하게 된 것은: 경제력이 부족해서도 아니요, 군사력이 모자라서도 아니며, 바빌론이 강해서도 아닌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라도 정녕 살려거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생명의 길이 먼 데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바다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 말씀이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신 30:12-14)고 합니다. 사실 유다가 멸망할 당시 위로 지배자로부터 아래로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음행과 환락과 우상숭배가 만연하였습니다. 정치인들은 자기 살 길만을 찾는 기회주의자들이었고, 강대국의 시녀노릇만 하였습니다. 저들의 생활은 도저히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사는 길이 있고, 죽는 길이 있는데도 유독 죽는 길로만 치달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명의 길을 ‘선택’하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합니다. 인간의 간사함을 사도 바울은 감추지 않고 진술합니다.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갈 5:17). 인간은 자기 안의 긴장과 대결 속에서 갈등합니다. 예수를 믿어도 갈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갈등이 더 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서에서 자신의 고민을 이렇게 토설하고 있습니다. “내 속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으나 내 지체 속에 다른 법이 있어 내 마음의 법에 대항하여 ··· 죄의 법아래 나를 사로잡아 두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인간입니까.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23-24) 라고 탄식합니다. 바울이 믿음이 부족해서 이런 갈등을 겪는 것은 아닙니다. 육에 의해 정향된 나를 부정하는 게 쉽지 않아서입니다. 내가 나를 부정해야 하니 내 속에서 찢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많은 시련과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역사의 명암이 교차하는 그늘 아래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 시련과 시험을 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몸을 쳐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려 했기에 시련은 더욱 극렬했습니다. 이사야 역시 그와 같은 고뇌 가운데서 “생명을 선택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리라”(신 30:19)고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우리 마음을 어떻게 가꿔야 하는 가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복음이라는 씨앗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놀라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서 기적과 같은 일을 일으킵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고도 기적은커녕 메마른 인생으로 살아갑니다. 우리 마음 밭이 그렇게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이 기름진 밭이 될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낭만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성령을 의지하라고 합니다. 성령을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