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은총의 사건(욜 2:28-32; 행 2:1-13; 눅 11:5-13 / 15.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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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욜 2:18). 이 요엘의 말씀은 창 6:3 말씀의 회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창 6:3). 원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담(바아담)은 하나님의 영을 지닌 존재였습니다. 그랬던 인간이 죄악으로 인해 영적 능력이 사라짐으로서 육체(바싸르)가 됩니다. 영적인 생명력으로 충만했던 인간이 육체만을 지닌 고깃덩이가 된 것입니다.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전에는 선지자, 예언자, 제사장 혹은 왕과 같은 특별히 선택된 소수의 사람에게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을 부어주셨는데, 장차 모든 사람에게 당신의 영을 넘치도록 부어주시겠다는 언약입니다. 가히 혁명적인 선포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의 성령강림사건은 바로 요엘서의 언약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당시 방언의 역사는 창세기 바벨탑 사건과 대조되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9). 언어의 혼잡은 소통의 단절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언어의 소통은 잃어버렸던 영성의 회복을 함의합니다. 하나님 거역하는 세상은 언제나 단일 언어로 소통시키려는 불순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각기 다른 언어들은 획일적인 통치의 장애물입니다. 헬라제국, 로마제국, 바빌론 제국, 이집트제국, 페르시아제국 등 이 지상의 제국들은 저마다 자기 언어로 세상을 통합시키고 지배하려 했습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우리말을 지워버리려 집요하게 공작했습니다.
자기 언어의 상실은 영혼의 상실을 초래합니다. 영혼의 상실은 자기 삶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성령은 각기 다르면서도 소통케 하는 놀라운 기적을 일으킵니다. 성령은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와 정신을 사랑합니다. 따라서 지식 위주의 주입식교육은 남의 삶을 주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삶이 부정되는 행위입니다. 육으로만 사는 인간은 1차원적인 본능의 세계 밖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세상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을 지닌 사람이라야 이웃과 소통하고 더 나아가 창조세계와 소통함으로써 세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당신의 영을 부어주심으로서 평등한 세계를 구현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인류는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성령과 함께 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영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든 소통을 부정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가 그랬던 것처럼, 바벨탑을 쌓았던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독재자들, 특권을 탐하는 자들, 온갖 부정한 일 가운데서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그럽니다. 그들의 가장 큰 무기는 바로 그럴듯한 명분과 비밀주의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명분과 두려움을 무기로 그들의 세계를 지배합니다.
성령은 바로 무지와 두려움의 세계에 광명의 빛을 밝힌 사건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영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소통의 은총을 입은 것이기도 합니다. 상실되었던 자기 삶을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아 취임사(눅 2:18-19)를 기록한 누가가 오순절 성령사건을 기록했다는 게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세상에 임한 ‘제1의 은총의 사건’이라면, 오순절 성령의 부으심은 더욱 구체적으로 개개인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신 ‘제2의 은총의 사건’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