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신앙(사 63:1-6; 롬 8:18-27; 요 16:25-33 / 16.3.13)

관리자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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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욕구가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예수를 믿는 동기 역시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런 변화를 겪었습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예수를 만났을 때 모든 것이 희망적이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한다면 암울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불원간 예수께서 메시아로서 세상을 호령할 영광스러운 날이 손에 잡히는 듯했습니다. 저들은 망설이지 않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어부들은 배를 버렸고, 세리는 직업을 버렸습니다. 그던데, 어느 순간 상황이 반전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수난의 길에 접어들면서부터입니다. 제자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과 충격을 받게 됩니다.

요한은 이처럼 혼란스럽고, 근심스러운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것들을 내가 너희에게 비유로 말하였으나, 다시는 내가 비유로 말하지 않고 드러내서 아버지를 일러줄 때가 올 것이다.”(요 16:25). 아버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당신의 수난을 통해서 알려주실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복음서의 수난기사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십자가는 아버지 하나님의 궁극적인 사랑을 드러냅니다. 동시에 자기 힘으로는 결코 씻을 수 없는 인간의 죄악과 역사의 불의를 폭로합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낭만이 아닌 고난의 현실을 직면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바로 ‘십자가 신앙’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저주받자의 형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십자가는 지옥문이었습니다. 그런 십자가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본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입니다. 바울에게 십자가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이고, 인류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증표, 구원의 증표, 희망의 증표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세계 인식은 십자가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바울이 피조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해서 낭만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당신이 나와 함께 이 복음의 열차를 타면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던 놀라운 세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을 말하고, 시련을 말하고, 허무를 말하고, 썩어짐을 말하고, 고난을 말합니다. 영광을 말하기는 하지만, 오늘의 영광이 아닌 장래의 영광을 말합니다. 희망을 말하기는 하지만, 이생에서 잘사는 희망이 아닌 장래 이뤄질 희망을 말합니다(롬 8:22-23). 분명 바울의 설교는 오늘날 교회들의 설교와는 다릅니다. 그는 인간의 현실에 대해 어떠한 가식이나 허례도 없이 진솔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예수께서 고난의 십자가를 수용함으로써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고,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신 것처럼 우리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내가 내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는 인간의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역설이고 신비입니다. 이에 대한 추론을 이사야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습을 이사야는 환상 가운데서 봅니다(삼하 63:1-6). 하나님께서는 누가 시켜서도 아니요, 누구와 의논해서도 아닌 당신 스스로 의로운 팔을 펴서 세상 죄악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눈에 보이는 희망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또 바랄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랄 때에는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롬 8:24-25). 우리는 고난을 회피하는 신앙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욕망의 투사로 구하는 믿음이 아닌 십자가 신앙이라야 삶의 고통과 역사의 아픔을 넘어서는 희망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 신앙이라야 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를 믿고 삶을 긍정할 수 있습니다.

(하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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