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의로서의 기적(왕상 17:8-16; 행 6:1-7; 막 6:30-44 / 16.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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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9세기. 야훼 종교가 수난 받는 시대에 갑자기 엘리야가 나타나 아합에게 도전장을 냅니다. 이때까지 엘리야는 충분히 연단된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의 손이 닿지 않는 빈들에 나가 피신하게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까마귀들이 물어다 주는 고기를 먹고, 시냇물을 마시며 지냅니다. 가뭄이 계속되어 양식을 구할 수 없게 되자 이번에는 시돈의 사르밧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나 막상 엘리야를 맞이한 이는 가난한 과부입니다. 과부는 기근이 계속되어 마지막으로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빵을 구워 먹고 외아들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럴 때 과연 누가 양식을 공급해주는 신인가! 바알인가, 야훼인가! 엘리야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바알이 아닌, 야훼께서 양식을 공급해주는 신임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여인을 향해 “두려워하지 말라”(17:13)고 합니다.
엘리야의 도피 여정에 과부가 등장한 것은 당시 과부야말로 생존의 한계선에 놓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과부처럼 절박한 이들과 함께 함으로써 기적의 목적에 부합한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그러합니다. 때는 세례 요한이 잡혀 처형당하는 살벌한 시대입니다. 민심은 흉흉하고, 백성들은 목자 없는 양떼처럼 방황할 때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처럼 삶의 기로에 선 이들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당시 보리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내 놓은 사람 역시 사르밧 과부가 한 끼 먹을 가루로 예언자를 대접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여기서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기적들은 모두 제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물질의 증식이 아닌 먹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이들을 살려낸 생명의 양식으로서의 기적입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물질 증식이 문제인 것은, 제의적 성격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물질은 끊임없이 증식하는데 생명을 살리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말씀 역시 이런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정말 열심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 것은, 물질의 결핍에서가 아닌 마음을 고양시키지 못한 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 때에 제자가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데….” 당시 사도들은 공동체의 문제가 무엇인지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말씀 봉사’ 없는 ‘식탁 봉사(사회봉사)’만으로는 공동체의 성숙을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공동체의 평화가 깨질 수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후에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가르침’(Didake)과 함께 ‘주는 그리스도시다’는 ‘신앙 고백’(Kerygma)을 역설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고전 8:1-13). 박해 시대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엘리야가 바알 앞에서 ‘야훼 하나님이 참 신이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한다는 것은 영혼의 고양과 함께 거듭난 존재로 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고백 없는 그리스도인은 거대한 로마 제국에 맞서고, 희망 없는 유대교에 맞서서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를 세워나갈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물론 지금 배고픈 사람의 입장에서는 먹을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에 의해 세례 받지 않은 물질은 공동체의 평화에 기여하지 못합니다. 세계는 지금 물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정화되지 않은 물질이 차고 넘쳐서 분쟁이 그치지 않고, 평화가 깨지고 있는 것입니다. 1%의 사람들이 더 많은 물질을 차지하기 위해 99%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세계입니다. 성경의 기적들은 단순히 물질 증식이 아닌 굶주리는 이들의 생명을 살리려는 제의적 성격을 지닌 기적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런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