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사의 것-하나님의 것(신 8:11-20; 롬 13:1-7; 마 22:15-20 / 16.7.10)

관리자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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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란을 꽃피게 하기 위해서는 난 화분을 한 달 이상 바짝 말려야 한다고 합니다. 물을 자주 주면 난이 꽃을 피우지 않고, 꽃을 피워도 향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은은한 향을 지닌 난 꽃이 결국은 극심한 갈증을 이겨내기 위한 생존전략인 셈이었나 봅니다. 사람도 난과 비슷하지 않을까?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갈증, 그것도 극심한 갈증을 겪음으로서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명기 말씀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의 잘박했던 삶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재창조되는 연단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억하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인가? 지난날 쓰라렸던 광야 생활,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삶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억은 현재를 과거와 이어지게 함으로써 미래에 나타날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에 대한 강박,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아픈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것은, 지난날의 불행을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국가 권력’에 복종할 것을 요구할 것을 표명합니다. 왜 그랬을까? 바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국가 권력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럴 때 그리스도인들이 국가 권력에 대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말해야 했습니다. 해체주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ida)의 시각으로 보면, 로마제국은 제국의 안정을 위해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매닮으로써 스스로 정의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유대교 역시 유대교의 생존을 위해 예수를 죽임으로써 더 이상 하나님의 정의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제국 밖의 정의, 율법 밖의 정의를 말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복음입니다.

바리새인이면서 로마 시민인 바울은 표면적으로는 로마의 법과 모세의 율법을 존중하는 것 같았으나, 실제로는 이 두 세계를 해체시키고 그 대안으로 새로운 사회조직을 세우려 했습니다. 복음의 실천적인 사회조직으로 ‘에클레시아’ 즉 교회가 그것입니다. 그 에클레시아에 속한 그리스도인들, 그중에서도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신이 바로 로마서 13장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요구는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마 22:21)고 하신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국가권력에 대한 순종은 국가에 대한 요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모든 권세는 위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말한 것 역시 그 때문입니다. 정의는 무질서에서 구현되지 않고 질서 가운데서 구현됩니다. 그러나 질서는 전적으로 위로부터 옵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것으로 삼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악한 권력일지라도 무조건 순응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출애굽 사건 해석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서는 출애굽 사건을 히브리 노예들이 ‘쟁취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으로 말합니다. 악한 권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혁명을 일으켜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사건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혁명에 의해 혁명의 대상이 됩니다. 인간이 혁명의 주체가 되어 공치사를 하는 순간 그것은 새로운 우상이 되어버립니다. 바울에게서 국가 권력에 복종한다는 것은 정의를 구현하는 권력을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리새인들처럼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라는 분리를 통해서 책임으로부터 도피하는 위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국가 권력으로부터 온갖 혜택을 누리면서도, 국가 권력의 불의에 항거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매도해왔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위선적인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하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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