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잔 달라는 말이 만들어낸 기적(룻 1:8-18; 갈 3:23-29; 요 4:7-26 / 16.6.12)

관리자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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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이야기는 불행을 행복으로 극복해낸 가정사입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배경은 더 큰 데 있습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고대 이스라엘이지만, 이야기가 기록된 시대는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온 직후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바빌론에서 귀환한 사람들로 인해 정체성 문제로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룻기는 그들과 함께 들어온 이방인들을 이스라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 일종의 저항문서입니다. 실제로 포로후기 문서에 의하면(느 13장, 스 10장),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순수성을지킨다는 명분으로 이방여인과 결혼한 모든 남자는,비록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파면시키고, 아내로 맞이한 여인은 쫓아내도록 했습니다.그처럼 국수주의적인 분위기로 살벌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도 자비를 베푸시는 분임을 설파한 것입니다.

복음 역시 극단적인 민족주의와 차별적인 세계관을 무너뜨립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의 관심은 언제나 ‘율법적인 세계관’과 ‘복음적인 세계관’이 어떻게 다른지를 해석하는데 힘을 기우렸습니다. 율법적인 세계관은 성과 속,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등 분리와 차별을 강화시키는 세계관입니다. 여기에 대해 복음은 분리와 차별의 벽인 율법을 해체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은 전혀 무익했는가? 바울은 율법은 복음이 오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울타리’ 곧 ‘가정교사’ 역할을 한 것으로 표현합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이야기는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던 예수께서 우물에 물 길러 나온 여인에게 물 한잔 달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실제 이 이야기의 배경은 매우 복합적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원수가 되어서 상종 자체를 금기시 했습니다. 더구나 사마리아 여인은 순탄한 삶을 산 여인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여인을 상대로 유대인 남자가 먼저 다가가서 물 한 잔 달라고 도움을 청한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요한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 목마름이라는 자연스런 필요를 매개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여행길에서 육신이 목마른 사람과,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영혼이 목마른 이가 서로 엇갈리면서 아슬아슬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단순할 것 같은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역사적으로 얽힌 문제, 종교적으로 얽힌 문제, 유대인인과 사마리아인 등 본질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됩니다. 그리고 종당에는 바위처럼 단단한 문제들이 해체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4). 놀라운 말씀입니다. 어디서 예배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라는 장소에 고박된 성전주의를 해체하고 각 사람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세계 모든 인류가 각자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남과 북의 막힌 현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지금 남과 북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전면에 내놓고 서로 상대를 굴복시키겠다며 모든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습니다. 피차 감정은 더 사나워지고, 국제적으로는 더 고립되고, 통일의 희망은 더욱 멀어지는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철수와 같은 자해적인 일까지 벌입니다. 사실 오늘의 날과 북의 문제보다 더 풀기 어려운 게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얽힌 역사문제, 종교문제, 감정문제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처럼 복잡한 문제를 ‘물 한잔 달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마침내 그 어려운 문제들을 해체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지혜가 없다는 게 참 슬픈 일입니다. 얼어붙은 남북에도 서로를 향해 물 한 잔 달라는 마음의 여유와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적은 거기서 일어날 것입니다.

(하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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