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그늘에앉은자에게비취는 빛(애 3:19-33; 히 6:9-20; 눅 1:68-79 / 1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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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는 유다 민족을 향해 인생의 성장과정(바이오 그라피)에 비유해서 말합니다. “젊어서 고생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지금 고생스럽다고 자꾸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입술을 티끌에 대라”(애 3:29). 입술을 티끌에 댄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땅에 엎드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부정하고, 말로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 침묵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입술을 티끌에 댄다는 것은 하나님의 경륜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낮추는 행위입니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 마음을 낮추는 겸손이야말로 새로운 내일을 약속 받는 첩경입니다. 고난이 인간 편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나를 낮추시고, 지혜롭게 하시고, 더욱 강하게 훈련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역시 박해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히브리서는 “게으르지 아니함” “믿음” “오래 참음”을 계속해서 주문합니다(히 6:12). “오래 참음”은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표징들은 반드시 시간의 숙성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어려움을 겪을 때, 사람들이 점술, 복술, 무속에 끌리는 것은 그들의 점복에 시간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쉽게, 요행으로, 초시간적으로, 수고하지 않고 이뤄지는 환각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런 식의 기적을 너무 좋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서에서 기적은 인간의 간섭에 의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임을 말해주는 일종의 표현양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적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시간이 배제된 환각과 망상을 근본적으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십니다. 소심한 아브라함이 믿음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은, 그의 인간됨 때문이기 보다, 그를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은 변덕스러운 역사와 인간으로 인해 실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둠 가운데서 오히려 찬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사가랴는 아들 세례 요한이 태어났을 때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다윗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며”(눅 1:68),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 하시리로다”(눅 1:79)라고 노랬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이 출생할 당시 세상은 참으로 암담했습니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성령에 충만하여 어둠을 뚫고 들어오는 빛을 보았습니다.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기쁨이 밀려들었습니다. 그의 찬양은 바로 영혼의 기쁨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쾌락’은 외적 자극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기쁨’은 자기 내면에서 솟는 존재론적인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쾌락’은 차고 넘치는데, ‘기쁨’은 고갈되어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산업 자체가 쾌락을 동력으로 삼아 먹고 삽니다. 사람들은 ‘쾌락’을 얻기 위해 분주하고,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쾌락을 자극할까 골몰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기 내적인 동기에서 사는 게 아닌, 상품, 이벤트 등 외적인 자극에 매달려 삽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쾌락’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날마다 은혜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을 때 기쁨은 솟아납니다.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는 희망의 빛, 생명의 빛이 비취는 성탄절입니다. 희망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늘로부터 오는 빛을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