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세상에 무엇을 남기나?(삼하 23:13-17; 약 4:1-10; 마 10:34-39 / 16.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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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으로서 인간의 욕망은 제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욕망하는가는 그가 살아가는 환경에서 학습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고보는 사람의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는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인지, 하나님을 기뻐할 것인가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사무엘서는 본받을만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과 전투할 때, 적진 안에 있는 베들레헴 성문 곁의 우물물을 마시고 싶다고 합니다. 부하 셋이 목숨 걸고 그 우물물을 길어옵니다. 참으로 충성스런 부하들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물을 마실 수 없고 합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무리 목이 마르기로 부하들의 목숨까지 걸고 물을 길어올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삼하 23:17). 다윗이 자신의 실수를 스스로 인정하고, 욕망을 절제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가 통일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분별력과 절제력을 지녔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업이 이익을 내는 일도 다르지 않습니다. 내게 들어오는 이익이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얻은 것이라면, 분별력이 있는 기업인이라면 그런 식의 이익은 취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기업에는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더 고약한 것은 정부가 그런 비정한 기업 활동을 채근하는 것입니다. 참 나쁜 나라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마침내 자기 분열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절제하고 하나님을 위해 복종하면 그런 사람의 인격은 통합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같은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불화하게 하려 왔노라…”(마 10:34-38).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진정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끊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욕망의 절제를 모르는 사람과 동조하고, 그런 혈육과 함께 살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면 정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런 화평은 깨뜨려야 하고, 그런 행복은 부서져야 합니다. 다함께 멸망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두 가지 강한 욕망이 펄펄 끊었습니다. ①부자가 되겠다는 욕망(소유욕) ②성공하겠다는 신분 상승의 욕망입니다. 한국 교회도 이에 질세라 세속의 욕망을 신앙으로 내면화시켰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성공의 길이요, 복 받는 길이요, 잘 사는 길로 여겼습니다. 지금도 이 같은 욕구는 교회 안에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리하여 ‘성공하는 믿음’, ‘믿음으로 인한 성공’이라는 말이 진리처럼 작용합니다. 인간의 욕망이 종교적 가면을 썼을 때, 그것이 사이비 종교입니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밀의 종교가 국가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벌어진 희대의 사건입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게 한 한국의 정신적 풍토입니다.
금년 기독교사상 11월호. 종교개혁 500주년 특집논문에서 정권모 박사는 “가톨릭이 가는 곳엔 문화재가 남고, 칼뱅교회가 가는 곳엔 민주주의가 남는다.”고 했습니다. 가톨릭과 개혁교회가 어떻게 다른가를 표현한 말입니다. 문화재는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민주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이 이 땅 즉 세속사회에 뿌리내렸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결실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세속 안에서의 복음화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집요하게 눈에 보이는 업적을 많이 내는 걸 복음화로 여깁니다. 교회들이 교회사업을 벌이는데 열심입니다. 장엄한 예배, 화려한 의상, 웅장한 예배당, 세련된 장식, 권위적인 조직체계 등을 통해서 자기를 드러내려합니다. 복음은 그런 걸 우상으로 여깁니다. 복음이 세상에 남겨야 하는 것은 복음의 가치로 세상이 변하는 것입니다.
(하태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