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왕국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합니다. “너희는 지금 전혀 무익한 거짓말을 의지하고 있다. 너희는 모두 도둑질을 하고, 사람 죽이고, 음행을 하고, 거짓으로 맹세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긴다. 너희는 이처럼 내가 미워하는 짓만 하면서도 이 성전에 들어와 우리들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래, 내 이름으로 불리우는 성전이 너희 눈에는 도둑들이 숨는 안식처로 보이느냐!”(렘 7:8-11). 당시 여호와의 성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예배자들로 가득 찼지만 속은 달랐습니다. 살인, 도적질, 간음, 거짓맹세, 우상숭배 등 온갖 종류의 악행으로 ‘도적의 굴혈’이었습니다(렘 7:13-24).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인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기도해도 듣지 않겠다고 하십니다(렘 7:16).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성전 문에서 외칩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느냐,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 하느냐, 정말 구원받고 싶으냐. 그러하다면 거짓된 예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드려라.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했고, 남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롬 10:9-13). 하지만 삶이 변화 없는 믿음이라면 제물도 나눔도 봉사도 예배도 회개도 믿음도 확신도 모두 거짓이고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약 2:14-26).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는 삶의 총체적인 변화 입니다(렘 7:3. 5-7; 마태 3:8-10). 가족관계, 교인 관계, 이웃 관계 사업관계 등에까지 거짓 없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고 말합니다.(롬 12:9)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나, 거짓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남에게 거짓말 하고, 아내나 남편을 속이고, 백성을 속이면서 겉으로만 ‘나는 당신을 사랑 합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죄악입니다. 사랑과 거짓은 본질적으로 공존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 바울의 명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 우리를 떨리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눅 8:14). “나는 믿으니까 구원 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샅샅이 드러나는 날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것이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아내나 남편, 부모나 자식, 교인이나 백성에게 진실한 것이 사랑 입니다. 철학도 예술도 교육도 정치도 진실의 추구입니다. 진실함이 없으면 모든 것이 거품이요 가짜요 거짓입니다. 이를 두고 바울은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베드로 역시 사랑을 말할 때 “정결하고 꾸밈없는 것”(벧전 1:22)이라고 표현합니다.
요즈음 대한민국은 왕거짓말쟁이 박근혜 대통령과 내시와 간신들, 하늘 황후가 되어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며 분탕질한 최순실과 그 우상들(렘 7:17-18)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정의의 아우성>으로 심판의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와 간신들, 6.25때 이승만과 간신들, 군사독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와 기생충들, 세월호 청소년 죽음 앞에서 거짓 눈물 흘린 박근혜 애국 애족 애민의 척도는 진실성으로 평가 됩니다. 거짓과 위선과 눈가림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 파괴요, 사람을 향한 사랑 파괴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요일 3:18)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아멘.
(고완철 목사)
남왕국 여호야김 시대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 합니다. “너희는 지금 전혀 무익한 거짓말을 의지하고 있다. 너희는 모두 도둑질을 하고, 사람 죽이고, 음행을 하고, 거짓으로 맹세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바알에게 분향을 하고,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긴다. 너희는 이처럼 내가 미워하는 짓만 하면서도 이 성전에 들어와 우리들은 안전하다고 말한다. …그래, 내 이름으로 불리우는 성전이 너희 눈에는 도둑들이 숨는 안식처로 보이느냐!”(렘 7:8-11). 당시 여호와의 성전은 겉으로 보기에는 예배자들로 가득 찼지만 속은 달랐습니다. 살인, 도적질, 간음, 거짓맹세, 우상숭배 등 온갖 종류의 악행으로 ‘도적의 굴혈’이었습니다(렘 7:13-24).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유다인을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기도해도 듣지 않겠다고 하십니다(렘 7:16).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일만 골라서 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성전 문에서 외칩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느냐, 하나님을 안다고 생각 하느냐, 정말 구원받고 싶으냐. 그러하다면 거짓된 예배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드려라.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실제로 북왕국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멸망했고, 남왕국 유다는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롬 10:9-13). 하지만 삶이 변화 없는 믿음이라면 제물도 나눔도 봉사도 예배도 회개도 믿음도 확신도 모두 거짓이고 결국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약 2:14-26).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는 삶의 총체적인 변화 입니다(렘 7:3. 5-7; 마태 3:8-10). 가족관계, 교인 관계, 이웃 관계 사업관계 등에까지 거짓 없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사랑에는 거짓이 없다”고 말합니다.(롬 12:9)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나,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나, 거짓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고, 남에게 거짓말 하고, 아내나 남편을 속이고, 백성을 속이면서 겉으로만 ‘나는 당신을 사랑 합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죄악입니다. 사랑과 거짓은 본질적으로 공존이 불가능 하다는 것이 바울의 명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 우리를 떨리게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눅 8:14). “나는 믿으니까 구원 받는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샅샅이 드러나는 날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진실한 것이 믿음이고 사랑입니다. 아내나 남편, 부모나 자식, 교인이나 백성에게 진실한 것이 사랑 입니다. 철학도 예술도 교육도 정치도 진실의 추구입니다. 진실함이 없으면 모든 것이 거품이요 가짜요 거짓입니다. 이를 두고 바울은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베드로 역시 사랑을 말할 때 “정결하고 꾸밈없는 것”(벧전 1:22)이라고 표현합니다.
요즈음 대한민국은 왕거짓말쟁이 박근혜 대통령과 내시와 간신들, 하늘 황후가 되어 나라를 파멸로 몰아가며 분탕질한 최순실과 그 우상들(렘 7:17-18)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정의의 아우성>으로 심판의 촛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선조와 간신들, 6.25때 이승만과 간신들, 군사독재,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와 기생충들, 세월호 청소년 죽음 앞에서 거짓 눈물 흘린 박근혜 애국 애족 애민의 척도는 진실성으로 평가 됩니다. 거짓과 위선과 눈가림은 하나님을 향한 진실 파괴요, 사람을 향한 사랑 파괴입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자”(요일 3:18)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이것이 우리의 신앙고백이어야 합니다. 아멘.
(고완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