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출 20:1-6; 빌 4:8-9; 막 12:28-34 / 16.10.23)
한국기독교장로회 삼일교회
03381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로 44-2 (녹번동)
연락처 : 02-386-6257 │이메일 : samilchprok@gmail.com
Copyright 2025. 삼일교회 all rights reserved.
한국기독교장로회 삼일교회
03381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로 44-2 (녹번동)
연락처 : 02-386-6257 │이메일 : samilchprok@gmail.com
Copyright 2025. 삼일교회 all rights reserved.
십계명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라”(출 20:2) 이 말씀 가운데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 될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나>와 <너>의 관계입니다. 나를 자유케 하는 십계명은 <우리>가 아닌 <너>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유는 나로 하여금 책임적인 존재가 되기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절대적인 권위로 선포한 법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스스로 자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 손에 넣고 주무르기 위해서 십계명을 선포하신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기본 정신은 ‘억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가가 십계명 안에 녹아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십계명의 기본 정신이 무엇이냐를 놓고 끊임없이 논쟁을 일삼았습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께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막 12:29-31) 예수께서는 2인칭 단수로 <네>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사랑을 말씀하실 때는 언제나 동사로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실천이지 이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만이 사랑이 무엇인지 압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삶의 진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랑해본 사람만이 옳은 일에도 모순이 있고 찬반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세상을 향해서 불평하고, 원망하고 냉소적인 사람은 대개 그의 삶에서 사랑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우리에게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8-9)라며 사랑을 ‘배우다’ ‘받다’ ‘듣다’ ‘보다’ 이렇게 동사로 말합니다. 사랑은 본능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서 배웁니다.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써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히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사랑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노력하고, 배워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사랑의 사람이 됩니다.
사랑은 모두 선한가? 그러지 않습니다. 사랑이 큰 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내 속에 있을 때는 개인적인 것이지만, 밖으로 표출되었을 때는 사회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독점할 수 없는 것이며, 사랑에는 정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게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되, 자식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 치고 절대적으로 옳은 일이란 없습니다. 사랑으로 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은 다 옳다’는 식의 태도는 항상 또 다른 모순을 만들어냅니다. 오늘날 복잡하게 얽힌 남북문제도 알고 보면, ‘이 방법 외에는 없다’고,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며 독선적인 열정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정열이 다른 사람을 반대자로 낙인찍을 수 있습니다. 적으로 단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랑의 정열로 하는 일일지라도, 자기모순과 잘못에 대한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악이 제거됨으로써 성숙해지는 게 아니라, 사랑이 성숙해야 비로소 성숙한 사회가 됩니다. 특별히 한국은 사회화된 공적인 사랑이 여전히 미숙한 사회입니다. 사회복지 수준이 낮은 것도 그렇고, 공권력이 국가의 권위를 앞세워 고통 받는 이들을 외면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기 삶에서 사랑이 시들어버리면 그의 인생 역시 시들어버립니다. 우리는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사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태영 목사)